땀 흘린 농부들을 생각해서 밥을 남기지 마라.
어린 시절 급식 시간에 늘 듣던 말. 그런데 정작 내가 커서 돈을 벌게 되자 나는 이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농부는 먹고살기 위해서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나는 돈을 냈다. 지극히 합리적인 인간의 경제활동에 감사함이라는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있는가. 그런 의문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농부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다기보다는 감사할 명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직을 하고 나니 조금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보였다. 세상은 꼭 돈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장 자율화, 유연 근무제 등 여러 제도적 복지가 잘 되어 있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면, 연봉을 조금 더 준다고 해서 쉽게 이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돈도 중요하지만, 나에겐 심리적 편안함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출퇴근이 힘든 회사보다는 조금 연봉이 적어도 집 가까운 회사를 선호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인간이 돈을 벌고 쓰는 이유는 결국 효용을 추구하기 때문인데, 이 효용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의 취향, 그리고 심리적 요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통근 시간의 힘듦을 피하고 싶은 마음, 꽉 졸린 넥타이를 벗고 싶은 마음, 출근 시간의 초조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이 돈보다 앞서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리고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다시 농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들에게도 돈을 벌기 위한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도시로 가서 직장인이 될 수도 있었고, 읍내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모든 선택을 뒤로하고, 농사를 짓는 행위를 택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 그의 취향과 심리적 요인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시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덕분에 밥을 먹는다.
내가 내 돈으로 산 한 그릇의 쌀밥을 먹으면서 감사한 것은, 그가 농사를 짓기로 결심한 그 선택에 있다. 단순히 돈을 넘어, 돈을 버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기로 한 그 선택.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선택을 내리게 한 그의 취향과 또 그의 심리적 요인. 사실 이것은 그라는 사람의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다. 결국 나는 그 농부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이처럼 누군가의 존재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니 세상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