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자 Mar 18. 2024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마법의 단어, 엄마

15개월이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돌이 조금 지난 시점부터 조금씩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어지간한 대화는 모두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다. 처음에는 자주 접하는 물건들, 예를 들면 기저귀를 가져오라고 하면, 저어기 있는 기저귀 한 묶음을 가져오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어지간한 단어들은 대부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독수리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갑자기 책장으로 가더니 그 많은 책 중에서 독수리 책을 꺼내서 가져왔다. 모든 아기들이 하는 행위지만, 정말 목도 못 가누던 아기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이게 참 신기하고도 감사하고도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큰다는 것은 정말 신비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말귀도 제법 알아듣는데, 오늘 재밌었냐고 하면 응이라고 고개를 끄덕하고, 목욕할래라고 물어보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으응이라고 거부하는 것을 보면 귀엽기가 짝이 없다. 아빠 좋아?라고 물어보면 응이라고 하는데, 가끔 기분이 나쁠 때면 절대 응이라고 하지 않는 걸 보면 그게 무슨 뜻인지는 다 알고 대답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얼마 전부터 날이 조금 풀려서 놀이터를 자주 가는데, 놀이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지, 놀이터 가자고 하면 창문으로 가서 놀이터 방향을 가리키면서 손가락을 편다. 미끄럼틀 타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응!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놀이터를 향해서 손가락을 가리키고 팔을 내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귀엽고 사랑스럽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온다.


문제는 듣기 영역이 발달한 것에 비해서 말하기 영역이 거의 전무한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말할 수 있는 단어는 밥! 물! 정도고, 나머지는 그저 동물 울음소리를 몇 개 따라 하는 정도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의사 표현은 결국 엄마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그러니 하루에 엄마를 수백 번은 외쳐대는데, 듣는 엄마가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다.


그런데 요즘 좀 웃겼던 게 이제 엄마라는 단어도 제법 버전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예전에는 그냥 엄마? 엄마? 였다면, 지금은 엄마도 종류가 대여섯 개는 된다.


첫 번째는 의문의 엄마다. 본인이 뭔지 잘 모르는 물건을 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엄마?라고 끝을 올린다. 이거는 이 물건의 이름을 알려달라는 뜻이다. 그러면 엄마가 물건의 이름을 두어 번 반복해서 알려주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이라고 한다. 이해했다는 뜻인 거 같다.


두 번째는 엄마~~ 다. 이건 하지 말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목욕을 시키거나 양치를 할 때처럼 본인 싫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렇게 외친다. 엄마, 나한테 왜 그래~ 하지 마~라는 의도가 정확히 이해되는 느낌으로 엄마~~ 하면서 약간의 짜증을 섞어 말한다. 너무 싫어하는 양치를 억지로 시킬 때 마음이 참 아프면서도 이런 엄마~~를 들으면 절로 웃음이 난다.


세 번 째는 엄마! 다. 이건 호출의 엄마다. 본인이 뭐가 잘 안 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혹은 신기한 걸 봤을 때 외치는 소리다. 빨리 와서 나의 상황을 살피고, 나에게 필요한 걸 달라는 뜻이다. 이 엄마는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특징이 있고, 몇 번의 호출에 바로 응답하지 않으면 바로 입술이 튀어나오면서 뿌~~~~ 하는 짜증이 뒷따른다. 가끔 뿌~~~ 하는 입모양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기다리기도 한다.


마지막은 엄마... 다. 이건 얼마 전에 처음 겪은 호출이었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엄마... 하면서 수줍게 엄마를 불렀다. 와이프가 침대에 같이 누워있었는데, 왜 그러냐고 되물으니 양손을 머리 위로 가져다가 올렸다. 우리가 늘 가르쳤던 사랑 해라는 팔 모양을 따라한 것이다. 와이프가 엄마 사랑해? 한 거야?라고 되물으니 수줍게 응!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아빠! 하고는 똑같은 팔 동작을 취하는 것이었다. 와이프가 아빠도 사랑해? 하니까 아기가 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이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홈캠으로 지켜보던 나도 눈물이 날 정도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지금은 엄마, 아빠가 할 수 있는 표현의 전부지만, 조금 뒤면 하나 둘 단어를 쏟아내고, 그 뒤엔 문장을 쏟아낼 것이다. 선배 엄빠들은 귀가 아프다, 시끄럽다라며 너스레를 떨지만, 그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울지 감히 상상도 하기가 어렵다. 종알 종알 자기만의 생각을 쏟아내는 그 순간이 기대된다.


아기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하건, 그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기질과 또 부모가 만든 가정의 환경과, 또 부모가 무수히 반복한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그것이 아기의 온전한 생각이라고 보기엔 어렵겠지만, 아기가 그것을 자기 만의 방식으로 잘 소화해서 우리와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이 두 배로 빨리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