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나는 멕시코행을 결정했다.
거기는 너무 위험하지 않니, 기왕이면 스페인이 낫지 않겠니,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둘 가치가 있을까. 왜 하필 멕시코야.
나를 좋아하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의 질문이 폭격처럼 떨어졌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스페인어를 배워야만 하고, 스페인어를 배울 수만 있다면 (어차피 한국이 아니라면) 페루,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스페인, 에콰도르 그 어디라도 좋았다. 아니. 어디라도 좋다기보다는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당시 나는 3개월 정도 멕시코에서의 체류 경험이 있으며, 멕시코에서의 어학연수 비용이 스페인보다 저렴했다. 그것만으로 나는 잘 다니던 공공기관을 그만두고 멕시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해외 생활에 대한 들끓는 열정이나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비행기에 오르는 그 순간부터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집을 구하고 어학원을 등록하는 과정을 생각만 해도 벌써 진이 빠졌다.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이웃들과 눈인사를 주고 받는 일들은 업무처럼 느껴졌다. 여기에서 필자의 필명이 정해졌다. 오매너. 매너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뜻이 아니고, 그냥 늘 약간의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사람.
당시 내게는 남미 카페에서 만난 동행이 있었다. 20대 초반이었던 그녀와 학생비자 발급을 위한 온갖 행정 프로세스를 함께 밟고, 별의별 고생 끝에 나란히 이코노미 좌석에 앉았다. 그녀는 걱정될 정도로 경직된 상태였으며 작은 것에 좌절하거나 크게 기뻐했다. 그런 그녀 옆에 있으면 나는 매사에 심드렁한 사춘기 소년 같았다. 멕시코에 와본 적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설마 늙어서일까! (당시 나의 한국나이는 서른. 어리다면 어리고 많다면 많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면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럼 도대체 나는 굳이 왜 이렇게 먼 길을 가려는 걸까.
내게 스페인어는 말하자면 이케아에서 파는 무향의 작은 캔들 같은 존재이다.
뒤늦게 스페인어를 학습하게 된 다른 사람들처럼 중남미가 나를 매혹시켰다거나, 스페인어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고는 차마 말을 못 하겠다.
그러나 손바닥보다 작은 캔들도 곁에 두고 있으면 열이 끼치는 법. 차라리 모닥불 처럼 한번 불타오르고 꺼지면 좋으련만. 이 캔들은 은은한 열을 뿜으며 내 안에서 사라지지를 않았다.
그래, 그럼 이렇게 된 이상 끝을 보자. 그렇게 나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채, 작은 캔들 하나를 마음에 품고 멕시코시티 코요아칸에 터를 잡았다.
(갑작스런 skip) 이제 멕시코에 온 지 딱 2년. 나는 아직 이곳에 있다.
처음 한국을 떠날 때 그리던 미래의 내 모습인가?
놀랍게도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다.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 회사 생활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갔듯 멕시코의 생활 역시도 그러했다. 크고 작은 변수들이 생기기는 했으나 크게 보면 얼추 예상한 길로 걸어왔다는 뜻이다.
나는 처음부터 알았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스페인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한다거나,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구한다거나, 아이가 생긴다거나! 하는 대단한 변화는 어지간해서는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지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좋고 나쁜 일들이 여럿 지나갔다.
즐긴 시간도 있지만 견딘 시간도 적지 않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더라. 이 지면을 빌어 다분히 주관적으로,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