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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하상 Apr 01. 2019

가족이랑 떨어져 혼자 살고 있어요

     

“아침 못 먹었겠네?” 친한 누나의 물음에 “아니, 낫또 먹었어”라고 대답했다. 제일 건강한 애가 건강도 제일 챙긴다는 말이 너무 웃겼다. 술 퍼마시는 모임에서 내가 가장 적게 마신다는 이유로 제일 건강하단다. 건강하게 살아야지! 가족이랑 떨어져서 혼자 살아보니깐 아프면 안 되겠다는 걸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어느 날, 골골대던 친구랑 좁은 노래방에서 음주가무를 같이 즐겼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독감 환자가 돼버렸다. 몸이 저리고 한기가 느껴지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게 독감이 이렇게 무서운 병이었나 싶었다. 내가 되도록 하지 않는 몇 가지 중에 하나가 아파도 엄마한테 말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님이 달려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니까 아프다고 말해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더라도 다 낫고 나서 아팠다고 말하자. 혼자 있을 때 아프면 서럽다는 말을 인정하기 싫어서 친구들한테는 서럽진 않다고 했지만... 부모님이 병원에라도 데려다줬으면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슬픈 게 서러움 아니면 무슨 감정이겠는가.


하루는 변기가 막힌 날 샤워기가 부서졌고 장마 동안 창문 위에서 물이 새더니 집을 며칠 비운 사이에 습기로 인해 곳곳에 곰팡이가 설어있었던 적이 있다. 너무 끔찍해서 집을 봉지에 담을 수 있으면 담아서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부모님이 해주시던 일들을 당연하게 여겨왔는데 역시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다. 학교에서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쓰레기 구분하기, 분리수거에 대한 이해, 청소학 개론 같은 것도 대학생들을 위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오기 전까지 가족과 떨어져서 살아본 적 없는 내가 너무 혼자 살아보고 싶어 호기롭게 결정한 자취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지금도 곳곳에 수북하게 쌓인 나의 옷가지들 때문에 지뢰라도 피하듯이 걸어 다니고 있다. 이상 나의 자취 수난기이다.


‘혼자 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느껴라,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한다’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혼자 살고 싶어 살든 어쩔 수 없어 혼자 살게 되든 이왕 혼자 살 거면 이리저리 치이고 서러워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친구들에게 가끔 듣는 질문이 있다. “혼자 있으면 안 심심해? 안 외로워?” 딱히 심심하거나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는데 그런 질문에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침묵이 공간을 잡아먹게 하지 마” 툭하면 전화 오는 친구랑 통화하다 보면 30분, 가끔은 그 이상 떠들곤 한다. 예전에 면접장에서 나의 자신감을 보겠다며 30초 동안 아무거나 해보라고 했던 면접관의 질문에 당황스러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멍 때린 적 있다. 그 이후로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기회를 잡으리라 하고 혼자서 무기를 준비하기도 한다. 성대모사 연습을 하다가 나도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는다. 혼자서 흥얼거리고 가끔 노래방 가서 분위기 띄울 춤도 연습하다 보면 딱히 심심하지가 않다. 그게 귀찮으면 노래든 팟캐스트든 소리를 튼다. 노래보다는 팟캐스트가 더 누군가 옆에서 재잘거리는 느낌을 줘서 재밌다. 그냥 뭐든 공간에서 소리가 존재하면 그렇게 외롭진 않는 것 같다.      


누군가랑 같이 사는 게 물론 좋다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무기력해질 이유가 전혀 없고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아직도 난 다 못 찾았다. 참고로 빨리 자라고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지금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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