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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비 Jun 04. 2021

0. 사람은 저마다의 지옥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2021. 04. 13  빌딩숲 너머 그을음에 대고 썼다.






 사람은 저마다의 지옥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내 안의 지옥은 나고 자라며 겪어왔을 지옥 같던 순간들의 모양과 꼭 닮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마음의 가장 안쪽에 빗장을 걸어 잠궈 감춰두었을 테고, 어떤 이는 자신의 바깥쪽에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람을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효용으로 보는 자. 쾌락에 인간성과 도덕성을 버린 자. 오직 돈으로 모든 것을 등급 매기는 자. 겉으로 보여지는 자신에게 스스로를 잃어버린 자. ….


 다가가지 않더라도 풍겨오는 지옥의 냄새가 있다. 그런 당신은 아마도. 당신과 꼭 닮은 지옥들을 헤쳐오며 살아왔을 것이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를 물어뜯어야 했을 것이며, 나를 지켜줄 단단한 갑옷이 될 때까지 그 역겨운 오물을 뒤집어써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느 순간.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뜯어먹고 뜯어 먹히는 아귀가 되어갔을 것이다.



지옥 같은 말들을 내뱉던 당신은. 마음이 지옥이었을 터이다.

.



나는 사람이고 싶었다.


 벌겋게 달아오르고 거멓게 썩어가는 상처에도 여전히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입 안 곳곳이 짓무를 때까지 깨물었으며, 꺾이는 무릎을 내리치고 붙잡았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했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외면했다. 그렇게 토해 내려는 지옥을 온 힘을 다해 틀어막아보려고 했다.


그럼에도 비집고 나온 것은 흐느낌이 되어 입술 사이로 흘러내렸다.

허덕이는 울음은, 참아내지 못한 신음은 말이 되지 못한 파편이었다.

그러쥔 손은 인내였으나 그 안의 떨림은 비명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마음의 잔을 다시 한번 별빛처럼 반짝이게 하기 위해선 맑고 선한 것을 넘치게 붓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사랑과 설렘과 호기심, 용기와 열정 그리고 믿음을 부르짖었다. 두려움과 낯섦에 미루고 있던 도전들을 진통제처럼 하루 사이사이에 쑤셔 넣었다. 달력을 넘기며 스스로 나아가고 있음을 손으로 기록하고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입으로 내뱉었다. 영혼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매일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도망치기 위해 걸었던 발걸음은 어느 순간 내가 바라는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걸음이 되었다. 매일 '다음'에 대한 상상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내가 애정 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궁금증을 품었다. 더는 악몽을 꾸지 않았고 고통에 몸부림치지도 않았으며, 증오와 분노 대신 사랑과 웃음을 피웠다. 무거움은 어느덧 경쾌함이 되어 속력을 올려갔다.


 200걸음. 돌아보니 제법 멀리도 왔다. 200일 동안 써 내려갔던 200편의 짧고 긴 글 속에서 선명하게 기록했던 그날의 하루들을 느낀다.


 이렇게까지 인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보듬어야 하는 걸까. 스스로도 종종 되묻는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2021. 04. 13.

이자비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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