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08. 햇살 좋은 날에.
지겨운 알람 소리에 맞춰 오늘도 눈을 뜬다. 절망보다는 희망이 조금 더 무거워 그 무게에 몸을 싣는 것뿐이다. 좀처럼 떠지지 않는 두 눈과 무거운 머리를 이끌고 삐그덕, 삐그덕ㅡ.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한 밤의 꿈 만으로는 씻어내지 못하는 어제의 피로감에 상관없이. 서둘러 집 밖을 나선다.
누군가 이런 나를 본다면 꼭 영원히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 시지푸스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누구도 웃지 않는 섬뜩한 농담으로 또다시 하루의 쳇바퀴를 돌린다.
일상이 바삐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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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바삐 움직였어야 했다.
그러나 그저 날씨가 좋아서 버스를 놓쳤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의 숨 막히던 미세먼지는 온데간데없고 상쾌한 공기가 내 아침을 반겨주는 바람에 고개를 한껏 들고 걸은 탓이다. 그렇게 걷다가 하늘에 걸린 분홍빛과 그 사이로 성글게 피어난 초록이 눈에 들어와 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그 때문에 세차게 울리는 버스 도착 알람에도 어쩔 수 없이 꽃잎의 자취를 따라 시선을 하늘에서 땅으로 흩날리듯 이어져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맑은 바람에 매일 아침 주어지는, 걸음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 몇 분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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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버스는 5분을 더 기다려야 정류장에 도착한다고 알린다.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일상이 맞물려 흐르지 않음을 느꼈다. 그것에 기분 나빠할 새 없이 바람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다듬다가 바라본 정류장 앞 나무에는 아직 못다 진 꽃잎이 듬성듬성했다. 붕 떠버린 시간으로 나무를 훑다가 제 몸 가까이 피어난 꽃을 바라봤다.
내리치는 빗줄기와 바람에도 용케 꽃잎을 움켜쥐고 있었다.
아마도. 이 꽃잎 한 조각이 여태 나를 기다렸다고.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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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부터 어긋났기에 무엇하나 매끄러운 법이 없다.
평소와 달리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했다. 예정에 없던 걸음을 옮겼다. 내가 지나가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멀리서부터 노랗게 핀 꽃이 반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고 이름 모를 동그란 꽃을 카메라에 담는 사이 버스가 지나가 버렸다.
이제는 화가 나기보다는 무언가 안에서부터 아려왔다. 지나간 버스의 이름도 알고 어디로 가는지도 아는데, 이 작은 꽃의 이름과 피고 지는 계절도 모른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와르르. 무너뜨린다.
꽃잎은 내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오늘 아침 그렇게나 반짝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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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삐 가던 나를 멈춰 세웠던 이 노랑과 연분홍으로 이루어진 불협화음의 이름은 필시 봄이리라.
오늘 하루가 어긋난 덕분에 봄을 한 아름 따왔다.
2021. 04. 08.
이자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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