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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비 Nov 11. 2019

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7년 09월 15일




작년 이맘때쯤 6주 동안 손글씨 수업을 받았다. 강의를 해주신 강사님은 유튜브로 영상을 보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알게 되었다.  이 손글씨 클래스는 강사님의 첫 번째 클래스였고, 비용도 생각보다 높았기 때문에 보름 정도 고민했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서 4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에 집으로 돌아와 바로 클래스 신청을 했다.  4시간의 대화를 통해서 느낀 점은 강사님은 책정된 금액 이상의 가치들을 주고 싶어 했고, 나는 그 가치들을 충분히 얻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강의를 통해서 손글씨 쓰기가 나에게 적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좌)클래스 마지막날 쓴 문장 / (우)연말모임에 책&선물과 함께 적은 책 속의 한문장



이  <츠바키 문구점>은 강사님과의 대화중에 등장했다.  대필가에 대한 책이라며 이 책을 소개해 주었을 때, 나는 '대필가'에 대한 흥미로움 보다는 '대필'이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느낌이 더 컸다.  무언가 위법적이거나 진정성이 없는듯한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었다.  이 이미지에 대해 강사님에게 이야기하자 책을 읽어보길 적극 권유했다. 이 책에서는 대필가와 의뢰인, 그리고 편지 대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대필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크다 보니, 대필을 '의뢰하는 사람과' '해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책을 덮고 나서 '대필'이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츠바키 문구점>이 되었다.




<츠바키 문구점>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가업인 대필 업을 이어받은 대필가 포포(아메미야 하토코)의 이야기다.  책은 시골마을 같은 고즈넉한 문장들과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에서 이웃들과 소소한 일상 이야기와 더불어 편지 대필 의뢰를 하나 둘 해나가며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어도, 제과점에서 열심히 골라 산 과자에도 마음은 담겨있어. 대필도 마찬가지야. 자기 마음을 술술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그 편이 더 마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네가 하는 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좁아져. 옛날부터 떡은 떡집에서,라고 하지 않니. 편지를 대필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대필 업을 계속해나간다, 단지 그것뿐이야.
<54p>


포포는 편지를 대필해준다.  이름이나 간단한 문장이 아니라, 주제를 갖고 써야 하는 편지를 대신 써주는 것에 대해서는 '과연 의뢰한 사람의 마음이 온전히 담길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많았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책의 수많은 곳에서 포포의 행동과 생각들로 보여준다.


의뢰를 맡긴 의뢰인의 분위기와 편지에 담길 내용에 따라 편지를 쓰는 도구들이 달라진다.  고압적인 태도와 급한 성미를 가진 '남작'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상대방에게 거절 편지를 써달라고 한다.  이에 포포는 칠흑 잉크를 쓴 만년필과 종이는 마스야의 원고지를, 봉투는 남작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크림색이 도는 화지를 선택한다. 우표는 거절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금강역사상 도안을 붙였다.

'마담 칼피스'가 조문 편지를 써달라고 할 때는 먹을 평소와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돌며 갈고, 슬픈 나머지 벼루에 눈물이 떨어져 옅어졌다는 의미로 연한 색의 먹으로 하얀 두루마리 종이에 쓰며, 불행이 두 번 겹치지 않도록 한 겹짜리 봉투에 넣는다.

모든 편지는 완성이 되면 아무리 형식적인 내용이어도, 다음날 아침 다시 한번 읽어보고 봉투를 봉한다. 밤에 쓰는 편지에는 요물이 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편지 대필의 의뢰부터 전달까지의 모든 사소한 행동들과 선택 하나하나에 받는 이에 대한 마음이 담겨있다.


편지가 가로 쓰기여서 봉투도 가로로 긴 양각 봉투를 골랐다. 편지지와 마찬가지로 크레인 봉투다. 봉투 내지로는 겨울 밤하늘 같은 짙은 감색의 얇은 종이를 사용해서, 어둠 속에서 별처럼 희망이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자 했다.
...중략...
재색 잉크로 이쪽의 조심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 슬픈 색은 아니다. 구름 너머에는 분명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64p>


대필가의 마음가짐을 알았으니 대필을 의뢰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사실 깊게 생각해본 적 없다. 편지를 쓸 때는 주로 가족들에게 쓰고 대부분 축하할 때뿐이어서 근황이나 감사에 대한 부분을 빼고는 앞과 뒤가 매번 비슷하다. 한마디로 고민은 하지만 곤혹스러웠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금껏 '나 스스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남들 또한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포포는 어린 시절 선대(할머니)에게 "이런 건 사기야! 전부 엉터리잖아, 거짓말투성이라고."라는 말을 한다.  이에 대해 선대는 자기 마음을 글로써 잘 풀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대필을 한다는 대답을 한다.


책 속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뢰가 있다.  결혼 15년 만에 이혼하여 이혼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알려야 하는 의뢰인.  큰 수술을 앞두고 어린 시절 결혼을 약속했었던 소꿉친구에게 서로의 가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그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안부인사를 하고 싶은 의뢰인. 글씨에 대해 몹시 까다로운 시어머님 환갑잔치에 축하편지를 보내야 하는 악필 의뢰인.  천국에 있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달라는 의뢰인.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비슷할 지언정 어느하나 같은 고민이 없다.  나에게 고민이 아닌것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민일수 있다는 것.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빵집에서 빵을사고, 제과점에서 과자를 사듯 대필가에게 대필을 부탁한것이리라.




편지를 대필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대필 업을 계속해나간다 
단지 그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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