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모든게 결국 DIY 로 귀결되는 것 같아.“ 서울에서 꼬박 한시간, 교외의 거대한 전시장에서 이뤄지는 빈티지 가구 전시회에서 동행인 A 가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수납 유닌 ESU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유닛들의 조합을 눈으로 훑으며 대뜸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DIY 라는게, 단순한 파츠 조립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개인의 생활 방식과 취향을 고려한 조합 창조를 말하는 거야. 듣지 않아도 짐작되었던 대답이 돌아온다. 당연히 후자지.
나는 기다린 듯이 말한다.
“확실히 가구 업계는 늘 그래왔지만, 특히나 요즘 개개인의 삶의 방식에 대응해 형태를 어느정도 바꿀 수 있는 방식을 많이 고민해.“
우리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을 예감했는지 자연스럽게 전시장의 구석으로 발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의 입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대량 개인화라는 개념이고, 굉장히 예전부터 나오고 또 실천되어 온 전략이야. 식품이나 화장품은 원료의 양만 조절하면 돼서 커스터마이징으로 대량 개인화를 실현할 수 있지만, 가구는 유닛을 통한 베리에이션이 중요한 키로 작용해. 지금 보는 가구나, 606 쉘빙 시스템부터 퍼시스 워크 데스크인 위워크에서 제공하는 파티션 유닛들도 다 이런 맥락에 가까워.”
말을 마친 나는 통통한 모양새를 가진 세산 소파를 내려다보았다. 형태는 전혀 다르나 나를 잠시 꿈꾸게 했던 브랜드의 대표 상품을 떠올리게 하는 정제된 재치가 담긴 디자인이었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던 브랜드가 있었는데, 그 브랜드를 더 잘되게 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생각해 본적이 있거든.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서 제작된 가구를 제안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실제로도 나이키 같은 제조사 브랜드가 이러한 시도에 실패했기 때문에.“
“나는 동일한 제품을 보고 소비자들이 각자 다른 의미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그 제품에 개인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면 소비자들은 그 제품과 브랜드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어. 그리고 이걸 실현하기 위해서 정말 좋은 방법은.”
나는 나의 동행자 A 가 신은 복싱화에 언뜻 눈길을 주었다. 복싱용 반바지와 민소매 스포츠웨어 따위는 걸쳐져 있지 않은, 그러나 긴 치마와 정갈한 흰 티셔츠를 입은 그녀의 페미닌한 복장도 짧게 살펴보았다.
“소비자가 브랜드가 제안하지 않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물건을 재해석할 여지를 만들어 두는 것이었어.”
소비자는 자아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제품에 애착을 느끼고, 애착한 대상을 수정하고 변형하는 행동을 통해 또다시 애착을 가진다. 언뜻 읽은 소비자 브랜드 애착 행동에 관한 논문 구절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정말 좋아하던 패션 커뮤니티의 친구들이 떠올랐다. 폴로를 입지만 키치하고 발랄한 소녀의 무드를 가졌던 한 여자아이 한 명, 정핏이 얌전한 티셔츠를 굳이 크게 사 스트릿 무드를 연출하던 친구 하나.
“사용자가 그 여지 안에서 물건의 용도나 형태를 변형해 자신만의 경험이나 제품을 창조하는 순간, 사용자는 그 물건을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것으로 인식하고 특별함을 부여하니까.”
내 이야기를 들으며 홀의 벽을 따라 둘러진 가구를 관찰하던 A 는 볼 만큼 보았던 것인지 3관의 출구로 향했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의 문은 그녀 몸의 세 배쯤 되었으나 무얼 걱정하느냐는 듯이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만 열렸다.
“나도 그래픽 디자인에서 이런 맥락을 좀 고려해보려고. 요새는 워낙 반응형 디자인이 대중화 되어있으니까.”
“꼭 반응형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까? 다르게도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A가 어떻게, 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픽 요소가 전부 분리되어 제공되는거야.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도록.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가구의 유닛이 재배치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잖아.”
말 그대로였다. 조금 전 언급했던 그 이름이 유명한 가구들뿐 아니라, 단순히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는 저가의 드레스룸 시스템 가구들조차 사용자들의 편의에 따라 타공판, 수납서랍, 행거 등 같은 규격의 다양한 유닛으로 재구성된다. 소파가 모듈화 되어 그 배치가 자유로워진 것 또한 예전의 이야기이고, USM로 대표되는 유닛 선반 가구들 역시 그 컬러를 믹스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가. 원형이 제안되더라도 그 원형을 따르지 않은 여러 베리에이션이 나올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 요즘의 가구이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아마 그래픽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제작자가 설계하여 벌어진 일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사용자가 먼저 움직여 조악하게 제품을 변형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 페인 포인트에 대응한 결과물일수도 있어. “
문 밖으로 나오자 쏟아지는 햇빛에 그늘로 몸을 숨기며 나는 말했다. 그러자 A는 눈을 위로 향하더니 뭔가 떠오른 것이 있다는 듯 아 소리를 냔다.
“트렁크에 테이블이 들어가지 않아 다리를 떼어낸 이후에, 이케아에 조립식 포장이 등장하게 된 것처럼?”
“응, 그리고 이케아의 여러 가구들을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기호에 맞게 변형하자, 이케아 리폼만을 위한 가구 다리 브랜드가 생긴 것처럼.”
이를 증명하듯 제품을 활용해 벌이는 온갖 응용을 뜻하는 유구한 용어마저 따로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해킹이다. 누군가가 굳이 서랍장의 손잡이를 바꾸는 것, 색색의 서랍을 사온 그대로 쓰지 않고 자신의 취향대로 재배열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해킹이고, 브랜드들은 이러한 해킹에서 페인 포인트를 읽어내어 제품으로 대응한다.
“사실 잡지를 오리고 스티커를 붙여 자신만의 그래픽 취합물을 만들어 다이어리를 장식하는 행위도 해킹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대응할만한 페인 포인트를 읽을 수 있는.”
그리고 실제로 그에 대한 대응으로 이러한 행위를 돕기 위한 여러 용품들이 이미 세상에 나와 존재하지 않나. 우리가 새삼스럽게 마치 새로운 것에 말하듯 이야기했을 뿐, 이미 일들은 벌어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근처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르꼬르뷔지에의 부엌을 떼어다 놓은 4관에서 나는 문득 그렇게 중얼거렸다. 낡은 식탁 위로 두 아이가 시리얼을 먹는 온기 어린 장면이 천천히 겹쳐진다. 동화책에 종종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 은지는 낭만적인 그 그림과는 다르게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림을 팔았다.
“한 장의 그림이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하는 법을 제안한 작가가 있었는데, 자신의 그림 이미지를 통째로 파는 것 이외에도, 한 부분씩 떼어다가 굿즈와 스티커를 만들었어. 한 그림 안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실제로 이는 일러스트 작가들이 자주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한 작품에서 최대한 많은 파생 상품을 만들어내자, 소비자들은 그 그림의 요소들을 모두 분리된 형태로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재배치하여 자신만의 꼴라주 일러스트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캔바, Adobe Spark 등 다양한 서비스는 그래픽 요소와 레이아웃을 제공하고, 소비자들은 이를 제안된 레이아웃에 맞게 배치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그래픽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결과물을 텍스트의 내용과 배치만 바꾸어 필요에 맞게 새로 만들어내는 방식을 제안했고 이미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래픽 아티스트의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를, 요소들을 재배치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으로 재창조해서 소유하는 게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겉으로는 A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사실 내 머릿속은 그보다 더 빠르게 모든 것은 가능하며, 심지어는 어딘가에서는 이미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러스트 분야와는 달리 그래픽 디자인에서 이런 접근 방식이 상용화되지 않은 이유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주로 기업을 상대로 일하기에 그 이름을 건 채 대중을 상대로 팬을 모으고 자체 상품을 파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었을 뿐,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일 수도.
그 넓은 전시장에는 음악이 있었던가. 그런 건 아무래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전시장의 음악이란 전시품과 시너지를 낼 수는 있을지언정 전시품을 넘어서는 존재감을 가질 수는 없다. 기억이 나는 건 아주 많은 가구와 내 동행자 A뿐.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카페에는 몇 년대의 스타일인지 모르는 재즈가 흐른다.
트럼펫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턱을 괴고 한 자동차기업이 후원하였던 미래 전시를 떠올렸다. 거기에 바로 이 음악을 해체하는 방법을 제안한 프로덕트가 있었다. 그것은 소리를 여러개의 레이어로 쪼개었으며, 또 쪼개진 레이어를 짧은 시간 단위의 블럭으로 쪼갰다. 그리고 창작자가 블록들을 조합하여 새로은 성을 쌓도록 유도한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사실 가구와 그래픽, 일러스트 이 셋만이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분야는 이제 구매하는 이의 재창조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소리와 전개가 부서졌다 다시 지어지는 음악, 벽이 사라지고 더해지며 움직이는 아파트, 쓰는 이들에 의해 구성이 개벽하는 모든 것들!
“어찌되었건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 같아.”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그래. 그리고 잘해야지.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나는 어떤 전시장의 야외공간이 가지기에는 지나치게 드넓은 들판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빈 공간 위로 생각을 그려보고자 마음속으로 펜을 들었다. 모든 상품이 결국 소비자들에 의해 재창조되고 말 앞으로의 세상에서, 좋은 상품을 만든다는 기준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더해지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 내가 읊었던 예시들은 대체 어땠기에 내 머릿속에 좋은 것으로 기억됐는가.
“단순하고 쉬워야 할 것 같아.”
재창조의 방법이, 쉬워야 할 것 같아. 이후에 나는 덧붙이고자 말을 이었다.
“그러려면 리밋이 필요하겠다. “
물론 그 리밋을 해킹하는 사람이 생기겠지만, 보편적으로는 지켜질 수 있는 한계가 필요할 것 같아. 활용할 수 있는 요소의 가짓수나 창조할 수 있는 결과물 유형의 수, 혹은 방법의 단계 수에 그어지는 제약. 사실 소비자가 자율성의 발현에 의해 “자기다운 물건”을 가지고야 말았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선 복잡한 행동이 필요하지 않아. 형태나 사용 방시을 바꿀 수 없는 양산품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르는 것 만으로도 그들은 그런 기분을 느끼곤 하니까. 거기서 더 각별한 감정이나 사용적 편의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은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해지면 될 뿐, 한도 끝도 없는 어려워지거나 힘들어질 필요는 없지.
말은 술술 이어졌고 동행자 A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깊은 눈으로 그 모든 이야기를 빨아들였다.
“왜냐면 만들어지는 과정도, 결과물을 볼 때의 기분도 모두 즐거워야 하니까.”
심미적으로든 기능적으로든 그들에게 꼭 맞는 제품은 그들의 머릿속에도 없어. 있었다면 누군가가 제안한 재료들 같은 건 버리고 백지부터 새로 써내려갔을거야. 그리고 태반의 사람들은 백지부터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즐거움보다는 스트레스를 느끼지. 그들에게는 그 정도의 창조 능력이 없으니까.
적절한 수의 재료를 제공하고, 조합의 방법을 최대한 간단하게 고안해서 복잡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기면서 모든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해. 그리고 만든 결과물의 질이 어느정도 보장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해. 이런 경험 과정 설계가 이제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의 새로운 역량이 될 것 같아.
흥분에 찬 나의 이야기가 끝나고도 나와 A는 한참동안 연못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바람을 맞았다. 바람이 굴러다니는 도깨비풀의 씨앗을 움직여 나르고 그것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변화의 움직임은 우리를 과연 어디로 데려갈까. 창작자의 영역은 과연 빼앗기고 있는가 혹은 넓어지고 있는가. 이 곳은 권한을 다투는 케이크 위가 아니라 개척하는 만큼 늘어나는 무한의 영토일까. 모든 것은 포크가 아닌 쟁기를 든 이들의 손 안에.
다리 언저리에서 풀과 꽃이 흔들리고 물가에서는 새끼오리가 삑삑 운다. 마치 우리가 선 이 곳이 한낱 전시장이 아니라,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생명력과 가능성을 지닌 세계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