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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 <덧없고 영원한>

by 정희주

기억은 잊을 수 있는 것인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작품과는 오랜 인연이 있다. 2018년도 당시에 도슨트 자원봉사를 하던 북서울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한 점을 전시했었다. 작품명은 <망각에 부치는 노래>였다. 이 작품은 루이스 부르주아가 어린 시절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가지고 있던 옷을 활용하여 만든 헝겊 책을 펼쳐 놓은 작품이다. 작가는 바느질을 통해서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다른 작품과 달리 벽에 걸린 그녀의 작품은 너무나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마치 삶의 굴곡을 지나 온 할머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읽어주는 동화 같았다.


<망각에 부치는 노래>, 2004


루이스 부르주아의 아버지는 자신의 정부를 가정교사로 들이고 수년간 불륜관계에 있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언니처럼 따르던 가정교사가 아버지의 정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지만 어머니는 이를 알고도 묵인한다.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이던 아버지에게는 분노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어머니에게는 연민과 죄책감을 느꼈으며 성에 대한 충동과 억압으로 유년시절 그녀의 내면은 찢어지고 갈라졌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20대 엄마가 죽고 나자 자살시도를 했고, 그 뒤로 살기 위해 미술을 공부한다. 20대부터 미술을 시작했지만 75세가 되어서야 페미니즘 미술가들에게 발굴되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으며 그 뒤로도 98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미술 작업을 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상처받은 자신이 경험을 평생에 걸쳐 작품을 통해 낱낱이 고백했다. 그녀의 작품들은 기억들을 해체하고 다시 그것을 엮은 흔적들이다. 그녀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망각이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던 것일까? 그녀는 기억을 어떻게 편집해 갔던 것일까? 7년 전의 이 질문은 의문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 채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기억을 기억하는 고약함


<검은 밀실> 정면과 후면


2025년 8월 루이스 부르주아를 호암미술관에서 다시 만났다. 전시공간은 여러 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체를 집으로 표현한 그림에서부터 밀실의 공간들, 조각 작품들도 유리케이스에 들어가 있었다. 처음 나를 맞이한 방은 <검은 밀실>이었다. 앞면은 철조망이 되어 있었고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조심스레 기웃거린 방 안에는 여성스러운 원피스와 어머니가 사용했을 법한 실타래가 있었다. 그리고 여성의 가슴이나 남성의 생식기를 표현한 것 같은 쌍을 이루는 조각도 보였다. 일상의 물건이지만 비밀이 가득한 다락방 같은 모습이었다.


<검은 밀실> 뒤로 돌아가 보았다. 껌껌한 방 뒤편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 어둠을 뚫고 나와 방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숨어있기 딱 좋은 장소였다. 드러나지 않도록 숨을 수 있으며, 빛이 있기에 희미하게나마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무섭고 쓸쓸한 생각이 들면서도 묘하게 편안하고 익숙했다. 누군가의 마음에도 있을 법한 그런 방이었다. 내 마음속의 '밀실'이 아는 척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몇몇 관람객들이 나를 따라 작품 뒤로 들어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슬쩍 보고는 밖으로 빠져나갔다. 숨겨진 것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서운함과 동시에 쾌감이 올라왔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서운함과 나만의 은밀한 장소를 들키고 싶지 않은 소유욕이 들었다. 방 뒤편에서 쭈그리고 앉아 잠시 머무르며 생각했다. 그녀는 어떻게 이 밀실을 빠져나왔을까? 내 궁금증의 전제는 '빠져나왔다'였다. 나는 그녀가 상처로부터 '벗어났다'라고, 상처를 '극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검은 밀실>은 <망각에 부치는 노래>로 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전시장에는 그런 여정의 기록들로 가득했다. 그 기록은 마치 전쟁터의 잔해물 같았다. 성교장면을 연상시키는 인형의 다리는 잘려있고 대신 의족이 채워져 있고 남녀가 뒤엉켜 있는 인형들은 얼핏 사랑하는 듯했지만 서로 떨어지지 못하게 괴기스럽게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어떤 인형에는 재단사였던 어머니가 사용하던 가위가 깊숙이 박혀있기도 했다. 천장까지 높게 올려진 벽틈 사이로 누군가의 침실을 전시해 두고, 관람자는 설치물 앞에 다가설수록 호기심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고약한 전시를 둘러보며 이렇게 자신을 들여다본 그녀는 이제 충분히 강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전시에서 그녀가 망각으로 가는 여정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녀의 성스러운 치유의 기록물을 확인하고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또 한 명의 순례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상처에서 치유로, 약함에서 강함으로, 결핍에서 충족으로 가고 싶었다. 과거의 기억을 돌아보는 동안, 자전적 글쓰기를 하는 동안 여러 번의 한계를 마주했고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전보다 더 강해졌고, 결핍이 줄어들었으며 상처가 희미해져 간다고 느꼈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지난 시간을 위로받고 싶었다. 나도 그녀처럼 상처를 극복한 강한 여자가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귤 에피소드: "거미, 정부, 그리고 귤"에서 발췌>, 2008년


그러던 중 한 전시 영상물을 보며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90세에 가까운 나이에 찍은 인터뷰 영상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고약한 말들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50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으며 마치 어제 있던 기억처럼 기억한다고 했다. 평생을 트라우마적 사건에 직면했고, 정신분석을 수년간 받았고, 자전적 글쓰기와 미술을 통해 자신을 돌보았으며, 미술계에서는 페미니즘 미술의 대모로 평가받는 그녀가 나의 생각처럼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시간 동안 자신의 기억에 대항하여 분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나? 머리가 어질 거렸다.


기억은 기억을 통해 창조된다.


이번에는 숙제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서울의 국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전시장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호암 미술관보다는 전시물은 작았지만 작품의 배치가 흥미로웠다. 창고처럼 큰 공간에 시계를 비롯한 연작 그림들이 사방의 벽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시계를 표현한 작품은 오전에서부터 시작해서 저녁을 지나 새벽 시간까지의 순차적 순서로 배치되어 있었다. 시계는 시간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었지만 시계로 둘러싸인 공간은 순차적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떤 그림에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시간은 그 그림을 중심으로 배치되는 것 같았다. 시간은 밤에서 낮으로, 아침에서 새벽으로 여러 시간을 이동했다. 나는 그녀의 노년을 만나기도 했고 다시 어린 시절을 만나기도 했다. 루이스 부르주아에게도 시간이 그렇게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순간으로 언제든 이동했던 것이 아닐까. 그랬기에 기억하는 순간의 감정을 생생히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 <Rocking to Infinity>, 국제 갤러리 전시 전경



얼마 뒤 호암미술관을 다시 찾아가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았다. 첫 번째 전시 관람에서 보지 못했던 마지막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영상 속의 그녀가 고통스러운 기억에 압도되는 장면에 놀라 마지막 자막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영상 마지막에 자막에는 이 인터뷰 영상을 촬영한 후 꿈을 꾸게 되었고 그 꿈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상처받은 기억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처받은 기억이 찾아오면 그것을 생생히 경험할 뿐, 그것이 떠나갈 때 붙잡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었던 것은 상처를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집착 때문이었다. 상처와 결핍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없애 버리고 싶었다. 예술가의 숙명이자 위대함은 자신의 상처와 결핍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다리가 잘린 소녀의 머리 위로 나무가 자라난 조각상이 놓여 있다. 작품 속 소녀의 다리는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 그러나 그런 채로 그녀는 살아남았고 꽃을 피웠다. 어떤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영구적인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뛰고 있는 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자신의 결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 지금 현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 이것이 그녀가 내게 알려준 강인함이다. 이것이야 말로 자유다. 이것이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 내가 부르게 될 노래이다.


<토피어리 IV>,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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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미술치료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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