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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성찰 그리고 기쁨

by 정희주

철학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내 마음에 크게 머물던 문장이 있었다. “자신의 신념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한 책에서 발견한 문장이었다. 이 문장은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한다는 불안과 동시에 집착을 떨쳐 낼지도 모른다는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자유로웠지만 무시무시했다. 특히 무너뜨릴 대상이 '신념'이라는 것이 거북했다. 나쁜 습관도 아닌, 악함도 아닌 '신념'아닌가. 내게 '신념'은 좋음을 의미했다. '신념'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로 있게 했기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신념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자기부정이며 지난 삶의 부정이라고 여겼다. 신념이 무너진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파괴되는 고통을 견뎌야 할까? 왜? 그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신념을 내려놓아야만 해방에 이른다면, 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닐까?


파사현정이라는 말처럼, 내 신념에도 그릇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부숴서 바른 것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각오를 했다고 해서 스스로 나를 파괴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편안함을 지향했던 삶에는 이렇다 할 마주침이 없었다. 큰 기쁨도 없었고 큰 슬픔도 없었다. 신념을 흔드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야 비로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사건은 사랑 또는 이별이었다.


사랑은 기존의 신념을 고집할 수 없게 만든다. 기존의 나를 고집하는 그 자체가 고통이 되기 때문이다. 이별은 기존의 신념을 재점검하게 만든다. 소중한 것을 잃고 후회하고 있다면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내게는 사랑과 이별이 동시에 찾아왔다. 철학공부와 인문 공동체를 만나는 과정은 사랑이었다. 처음에는 결핍을 채우며 나를 위로했고, 나중에는 서로의 양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꼈다. 나뿐 아니라 ‘나’와 만난 ‘너’ 역시 그 정도와 수준은 다르겠지만 우린 서로 다른 존재로 변화해 갔다. 이는 사랑에 대한 고정된 신념을 바꾸게 된 마주침이었다.



이별 역시 나를 바꾸었다. 선함에 대한 가치를 돌아보게 되었다. 왜 그때 소중한 마음을 놓쳤는지 반성했다. 내가 가진 신념이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오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위로를 위로로 받을 수 있는 사람, 격려를 격려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위로를 받으면서도 자기 슬픔에만 잠기지 않는 사람, 격려를 통해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너’의 사랑을 무력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신념을 부수는 시작은 지난날의 과오를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의 이기심을 보는 과정은 정말 괴로웠다. 가끔은 성찰이 아닌 학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상처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딱지가 앉은 곳을 다시 뜯어 파내는 것은 아닐까? 자꾸 상처를 만지며 더 덧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순간도 있었다. 나는 상처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어떻게 성찰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상처가 덧나는지도 모르고 계속 쓰다듬기도 했고, 지나치게 과격하게 대하며 나를 탓하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기억을 찾 적당한 거리와 속도를 알게 되었다.


적당한 수준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내게 사고가 생겼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생겨난 일들을 수습하며 가면 되는 거였다. 삶에서 상처를 입었다면 일단 앉아서 치료부터 해야 한다. 우선 아픈 곳을 들여다보고 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상처가 회복되고 나면 다시 걸어가면 된다. 이전에 넘어진 이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며 걸어가면 된다.


이전에 상처를 입고도 다시 일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왜 내가 넘어졌을까?"라는 질문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넘어지지 않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는 넘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오만이 있었다. 나 역시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돌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돌이나 구덩이가 있어도 넘어지지 않는 그런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내가 불운을 만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오만함이 한걸음 앞으로 걷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불운이 생겼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그 문제를 살피면서 ,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을 옮기면 되는 것이었다. 받아들임과 내딛음 사이에서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다는 것은 겸손함이다. 요즘 겸손은 언뜻 자신을 낮추고 잘난 체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행동일 수 있다. 누군가의 미움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다는 것 아닌가. 요즘의 겸손은 방어적인 의미일 때가 많다. 진정한 겸손은 정직함에서 나오는 성찰이다. 자신의 잘못과 결여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의 상태를 축소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은 채, 지금 여기의 좌표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겸손이다. 나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그래서 기쁜 일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많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새로운 기억이 많이 쌓였다는 의미일 테니까. 새로 쌓인 기억으로 친구에게 선물을 줄수도 있을 테니까. 생각만큼 멀리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출발하면 되는 일이니까. 제대로 된 한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출발이 되니 말이다.


신념이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신념이 고정된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하던 대로 되지 않았다. 프랑스에 가고 싶어서 불문학을 공부했지만 IT기획자가 되었고, 사회적 성취를 향해 질주하던 것을 멈추자 미술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독신주이자였지만 결혼을 했고, 기대했던 결혼생활이 아니었지만 아이를 낳고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 다양한 삶을 태도를 배우고 있다. 10대에는 상상해지 못했던 삶이 20대에 펼쳐졌고, 20대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40대의 삶이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나의 50대, 나의 60대 이후의 노년의 삶에도 지금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도모할 때면 생각하는 결과가 있다. 목표와 바람이 있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상(모양)에 대해서는 이제는 덜 집착하게 되었다. 그 여유는 시작과 끝 사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과정 속에는 내가 선택할 여지가 있다. 작게는 내 앞에 놓인 운명을 받아들이는 일, 크게는 그 운명을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며 내가 사랑하고 싶은 이를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나의 끝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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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미술치료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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