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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Nov 08. 2020

교수님이 내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할 때

성격 괴팍한 천재 교수님께 내 말을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하면 일어나는 일

이번 주는 다소 힘든 한 주였다. 드디어 중국에 입국하며 거쳐야 하는 3주간의 격리가 모두 끝나고, 오프라인 수업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한 주였기 때문이다.

월요일에 수업이 두 개, 화요일에 수업이 두 개, 목요일에 수업이 한 개. 그중에서도 가장 긴장되는 수업은 바로 목요일에 듣는 한 수업이었다.



성격 괴팍한 천재 교수님


목요일의 그 수업은 천재적인, 그래서 학계에 한 획을 그은, 하지만 나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괴팍한 성격을 가진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그 교수님의 괴팍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터였다. 수업시간에 마치 쥐 잡듯이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것은 기본이었다. 일단 눈 밖에 난 학생은 철저히 무시하기도 했다. 수업시간 내내 질문을 하라고 우리들을 닦달하지만, 정작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이 나오면 이딴거 묻지 말라며 화를 내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수업시간에 몇 번이나 그 교수에게 혼쭐이 났던 한 석사 동기는 졸업논문 심사를 통과한 그날 밤 내게 한 장의 스크린샷을 보냈다. 바로 메신저 친구 목록에서 그 교수님을 삭제한 스크린샷이었다. ‘드디어 벗어난다’라며 그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학문적으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꼭 인격적으로도 존경받을만한 건 아니야”


다른 한 동기는 박사 과정에 진학하려는 나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비슷한 과로 전향하면 안 돼? 이 과에서 계속 그 교수님의 영향 아래에 있다가 네 성격이 이상해질까 봐 진짜 걱정돼 나는”


나 자신도 그 교수님에게 수 차례 시달린 바가 있었다. 그중 한 번은 갓 석사 과정에 입학해 지도교수를 정할 무렵이었다. 그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지도교수 선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이런 말을 했다.

“유학생은 절대 나를 지도교수로 신청하지 마라. 귀찮으니까.”

그날 그 수업에 유학생은 나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내가 누군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하면서 무조건 ‘귀찮은’ 존재로 취급해 버리는 그 사람이 정말 싫었고 야속했다.


그런 교수님의 수업을 또 듣게 되었다. 이제는 박사 과정 학생으로서 말이다. 수요일 밤에는 잠을 자다가 한두 시간마다 깨고 다시 잠들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대망의 목요일이 되었다.



교수님이 내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할 때


수업에 앞서 여러모로 준비는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수업에 앞서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까먹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가 수업 시간에 나를 발견하면 분명히 질문을 던져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교수님의 수업 시간에 박사과정 학생들은 끊임없이 시험의 도마 위에 올랐다. 내가 그에게 질문을 하지 않으면, 그가 나에게 질문을 해올 것이었다. 나는 ‘선공’을 하기로 결심했다.


한 차례 긴 강의가 끝나고 드디어 ‘그 시간’이 찾아왔다. 교수님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질문 있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더 재지 않고 일단 손을 들었다. 교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호오? 저 녀석 한국에서 이제 돌아왔군?’ 하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거의 심장이 터질 지경인데 그 교수님은 갑자기 할 말이 더 생각난 듯 나에게 “너는 이따가 질문해”라고 말하더니 수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약 5분 후, 다시 대망의 ‘그 시간’이 찾아왔다. 그 교수님은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렇지만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교수님을 바라보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에야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건 중국어가 아니었다. ‘외계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교수님은 내 질문이 끝나자 똥 씹은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아닙니다, 교수님”이라고 말하고 그대로 자리에 앉을 것인지

그 자리에 서서 떨리는 목소리라도 계속 말을 이어나갈 것인지


무슨 패기였던 것인지, 그 순간 내가 선택한 것은 말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석사과정 내내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그래서 길에서 우연히라도 제발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했던 그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나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수님께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놀라웠던 것은, “제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나서 마치 마법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딱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나를 둘러싸고 있던 두려움의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두려움의 안개가 걷히자 외계어가 아니라 중국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평소처럼 버럭 화를 내지 않았다. 말을 끊지도 않았다. 때때로 더듬거리기는 해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설명을 마무리하며 다시 교수님의 얼굴을 살폈다. 교수님의 얼굴은 더 이상 방금 전의 그 ‘똥 씹은 표정’이 아니었다. 교수님의 조그만 눈동자가 까맣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내 말을 이해한 것일까?


그랬다. 교수님은 내가 궁금했던 점을 정확하게 해결하는 답을 내어주셨다.


다음부터는 이딴 질문 하지 말라며 버럭 화를 내지도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며 나를 쥐 잡듯이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내가 궁금했던 점에 차근차근 담백하게 대답해 주시고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쿨하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 질문 있나?”



성격 괴팍한 천재 교수님께 내 말을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하면 일어나는 일


집에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정말이지 너무나 가벼웠다. 첫 주 수업을 무사히 마무리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다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방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왠지 축배를 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무엇을 위한 축배였을까?

교수님의 냉랭한 표정을 마주했을 때 주저앉지 않고 말을 이어나간, 그 찰나의 용기를 위한 축배였다.


그 찰나의 용기가 있어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고, 궁금한 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오늘 밤 두 발 뻗고 잘 수 있게 되었고, 용기를 내서 작은 일을 이루어 낸 경험을 적립할 수 있게 되었다.

덤으로 교수님께 '굳센 학생'이라는 인상을 남겨드릴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그 어떤 열악한 상황 속에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꿋꿋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느낀다.

말하지 않으면, 발을 뻗고 잘 수 없다.

설령 욕을 먹을 것 같아도, 돌을 맞을 것 같아도, 이게 진짜 나의 생각이라면 포기하지 말고 말을 이어나가야 한다.

욕을 먹어도, 돌을 맞아도 마음만은 후련하다. 게다가, 아마 반응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괴팍한 우리 교수님도 저렇게 담백하게 넘어가 주시지 않았는가?ㅎㅎ


So speak yourself!!

우리 모두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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