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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Apr 18. 2022

북경에서 받은 보이스피싱 전화

그리고 어마 무시한 그 후의 이야기

때는 작년 12월 28일이었다. 햇살이 좋은 겨울날. 공부를 하러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갔다. 널찍한 유리를 통해 햇볕이 담뿍 들어오는 멋진 카페였다.


정오를 갓 넘길 무렵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다이얼이 울리는 동시에 통신사로부터 메시지가 한 통 왔다. ‘지금 걸려오는 전화는 해외에서 걸려오는 전화이니 주의하세요.’ 평소에 나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하지만 해외에서 걸려오는 전화라고 하니, 어쩌면 한국에서 가족이나 지인이 건 전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여태까지 가족이나 지인이 국제전화로 전화를 걸어온 적이 없었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윤 여사님이시죠? 여기는 00 택배 북경 배송 사무실입니다. 저희가 고객님의 택배를 분실했습니다. 그래서 보상 문제 논의를 위해 연락드렸습니다.”


이런… 택배를 분실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앞으로 골치 아픈 일들이 펼쳐지고 신경을 쓸 걱정이 앞섰다. 이 전화가 국제전화라는 것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분실한 택배 송장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뒷 네 자리가 ****입니다. 이제 고객님께서 해주셔야 하는 것이 ……”


택배 번호 뒷 네 자리가 무엇이라고 하는지까지는 들었는데, 상담원의 말이 너무 빨라서 그다음 말부터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죄송하지만 조금 천천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외국인이라서요”


갑자기 전화기가 먹통이 된 듯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뭐지?'라고 생각하며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 앱을 열었다. 분명 최근에 구입한 물건이 몇 가지 있었다. 택배사와 송장번호를 확인해 보니 확실히 방금 전 전화로 안내받은 정보와 일치하는 택배가 있었다.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방금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제 택배를 분실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고객님, 저희는 택배를 분실했을 때 전화로 안내를 드리지 않습니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으신 겁니다.”


흠, 그랬군. 보이스피싱 전화였군. 최근 중국에서도 보이스피싱 피해사례가 워낙 많아 주의를 당부하는 공고를 이미 많이 접해왔던 차였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택배를 받기 위해 입력한 이름(윤 여사)과 내 전화번호는 물론, 택배사와 송장번호 끝 네 자리까지 알고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은 무척 놀라웠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약 한 시간 후, 또 다른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혹시 방금 전의 그 보이스피싱 전화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아니었다. 전혀 다른 곳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공안국 반 보이스피싱 범죄 전담반입니다. 윤** 씨 맞으신가요?”
“네, 맞는데요.”
“혹시 오늘 정오 무렵에 홍콩에서 걸려온 전화를 한 통 받지 않으셨나요?”
“홍콩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는 한 통 받았습니다.”
“그 전화는 보이스피싱 전화입니다. 그 어떤 요구사항에도 응하지 마십시오.”


네…? 보이스피싱 전화인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런데 제가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는 해외에서 걸려오면서 보이스피싱으로 추정되는 번호를 모두 관찰 추적하고 있습니다.”
“…”
“당신의 핸드폰을 감청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군요.”


공안국 직원이라는 상대방은 나의 우려를 알아챈 듯 감청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미심쩍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더 캐물을 만한 근거는 없었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찝찝한 기분이 남았다.


그로부터 약 30여분 후. 문자가 한 통 왔다. 학교 교무부 선생님이었다. '혹시 오늘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니?'라는 내용이었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것보다, 전화를 받은 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중국 공안국과 학교 행정실에서까지 연락이 온다는 사실이 더 소름 끼쳤다. '내가 누구와 연락을 하는지를 평소에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어 굉장히 불쾌하기도 했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것은 맞지만 피해를 입은 것은 없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제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하다'라고 답장했다. 아마 학교 교무부 선생님은 외국 학생이 '중국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나라'라고 오해할까 봐 걱정이 되셨는지 곧바로 아주 상세한 답변을 주셨다.


그 답변인즉슨, 학교에서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학생이 많아 학교 파출소에서 '공안국 반 보이스피싱 범죄 전담반'의 서버를 수시로 체크한다는 것이다. 서버에는 보이스피싱 의심 번호로부터 전화를 받은 사람들의 번호가 올라오는데, 만약 서버에 학교 학생의 번호가 올라온 것이 확인될 경우 그 즉시 교무부에서 연락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조금 전 공안국에서 해준 설명과 연결 지어 볼 때 모순되는 점은 없어 보였다. 보이스피싱 사기가 극성이라 이렇게까지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의심되는 번호가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지 공안국이 감시하고, 전화를 받는 즉시 능동적으로 보이스피싱 전화임을 알려주는 것은 분명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나 역시도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보이스피싱 전화일 거라고 생각지 못했지 않았던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감시 체계가 악용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다소 찝찝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 이곳은 정부가 기술을 악용하더라도 인민들은 무방비하게 당할 가능성이 큰 사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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