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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Nov 23. 2020

감자탕이 먹고 싶은 밤

100일 글쓰기 1번째 꼭지

 엄마가 직장을 갖기 전에는 집에서 감자탕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비싼 식재료로 끓였을 테니 외식하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가족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겠지만 확실히 어린 시절에는 외식이 드물 정도로 가족의 살림이 빠듯했던 것 같다. 엄마는 벌써 7년째 쉽게 지치는 몸이지만 월급을 받는 직장에서 일한다. 학비 잡아먹는 괴물 시기의 정점이던 고3이 지나고 집은 전보다 여유로워졌다. 고기보다 해물인 아빠가 저녁을 밖에서 먹는 날에는 엄마와 감자탕을 먹는 즐거운 저녁이 대학교 2학년 내내 자주 있어서 좋았다.


 감자탕은 정말 맛있다. 부드럽고 결이 살아있는 살코기는 질겅이는 비계가 없지만 뜨겁고 칼칼한 국물에서 데워지기에 퍽퍽하거나 단단하지도 않다. 비계를 싫어하는 내게 감자탕 속의 고기는 언제 떠올려도 식욕 당기게 한다. 우거지와 깻잎은 푹 익어서 젓가락으로 들어올리기만 해도 쉽게 찢어진다. 생 깻잎에 비계가 붙은 삼겹살 구이를 싸먹으라면 고개를 젓겠지만 육수를 머금어 짭짤하고 푹 익어서 부드러운 감자탕 속 깻잎에 고기를 얹어 먹는 것은 즐겁다. 입 안에서 흩어지는 고기와 씹는 맛이 있는 깻잎의 식감이 잘 어우러져서 맛있다. 팽이버섯은 씹으면 특유의 아작아작한 소리가 입안에서 작게 들리고 푹 익어서 한입 크기로 찢기 편하며 간이 잘 배어 완벽하다. 마라샹궈에 넣은 팽이버섯과 견줄 만 하다.


 감자탕에서 가장 짜릿한 부분은 고기와 우거지로 배를 반쯤 채우고 나면 더욱 기다려지는 감자다. 물론 감자탕의 감자는 돼지의 특정 부위를 일컫는 말이지만 나는 식물 감자를 사랑한다. 구워도 쪄도 삶아도 튀겨도 맛있다. 매운 국물 속에서 잘 익은 감자를 건지면 벌써 색깔부터 샛노랗고 겉면이 포근포근하다. 젓가락으로 가운데를 콕 찌르고 양옆으로 벌리면 아주 작은 힘에도 바로 두 조각으로 갈라지는 익힘의 정도는 너무나 조화롭다. 파근파근하니 부드러운 감자를 한조각씩 고기, 채소와 곁들이는 것이 내가 감자탕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감자가 다 익었다는 건 감자탕에서 65퍼센트는 지나갔다는 뜻이다. 98퍼센트에 도달해 모든 고기가 사라진 감자탕을 110퍼센트로 만드는 단계가 바로 볶음밥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든 것을 볶음밥의 재료로 고려할 줄 알아야 하며 진정한 한국음식은 그 끝마무리 단계에 볶음밥 추가가 가능한 법이다. 떡볶이가 이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감자탕의 볶음밥은 닭갈비의 점도 높은 국물이 주는 살짝 되직한 느낌과는 다르다. 적절히 가볍고 조화롭게 촉촉하다. 눌러붙은 밥은 탄수화물이 이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라 믿는다. 튀김옷은 그 내용물이 있어야 하고 튀김껍데기만 먹는 것은 낭비인데다 쉽게 질리지만 눌러붙은 밥은 어떤 양념도 없는 누룽지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하다. 누룽지 먹고 싶다.

 이렇게 감자탕을 좋아할 수 있는 건 내가 감자탕을 먹을 때마다 엄마와 함께이고 그때마다 엄마가 내 접시에 고기를 발려주기 바빠서가 아닐까. 엄마가 고생하며 돈을 벌어서 나와 걱정없이 감자탕에 사이다를 시킬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사랑하는 엄마에게 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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