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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터 Jan 16. 2024

외로운 엄마

자폐인과 산다는 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는 자폐인 가족들에게는 특별한 드라마였다. 물론 세상에 우영우는 없다. 아 아니다 있을 수도 있다. 드라마 아닌가.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재벌이 없듯이, 그런 자폐인도 없는 정도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큰 울림은 분명했다.

많은 장면들이 의미 있었지만 나에게 크게 와닿아 지금까지 기억나는 장면 있다. 우영우가 자폐인 사건의 의뢰를 받고 아빠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난 그 장면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아 진실로 펑펑 눈물을 흘렸다.


"자폐인과 사는 건 꽤 외롭습니다"     


바닥에 널브러진 블록을 밟은 아빠가 발을 부여잡고 아프다며 엉엉 우는 흉내를 낸다. 그러나 우영우는 관심이 없다. 흐트러진 블록을 나란히 정리할 뿐.

이 세상 함께 하는 건 너와 나 둘뿐인데 너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아빠의 말을 누구는 그렇구나 하고 들었을 테지만 나에겐 너무나 마음을 후비는 이야기였다.

나에게 관심이 없는 아이. 그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꽤 마음이 단단해야 했다.     


오늘도 DH의 동생들은 블록을 만들면 엄마에게 자랑하기 바쁘다.

"이건 비행기야, 멋지지?" "엄마는 뭐 먹고 싶어?, 기다려봐" "이거 같이 만들자"

끊임없이 대화가 오간다. 아이와 함께 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지금 동생들 연령 때의 DH를 생각해 보면 ‘함께’가 힘들었다. 상호작용놀이를 할라치면 정말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대화를 거는 쪽은 모두 나였다.

"DH야 이거 봐봐" "DH 뭐 줄까?" "이거 같이 해보자"

난 늘 벽을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첫 아이였기 때문에 더욱 몰랐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원래 이렇게 힘든가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영우 드라마를 보고 알았다. 난 외로운 것이었다.     


물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과 같다. 우영우 아빠도 그러지 않던가

"지금은 훨씬 낫지. 대화가 되잖아."

그러나 우영우가 고래 이야기만 하듯, 또 시금치를 다듬으며 차분히 이야기하자는 아빠의 말도 자르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듯. DH도 자주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다. 내가 그 세계에 온전히 잠수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아이와 교감은 떨어진다.

결국 나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고, 그 안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를 보면 외로움은 매한가지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산다는 건 외로움을 견디는 일' 일지 모른다. 누구나 외로움이 있다. 하지만 우린 외로움에 허우적거림과 동시에, 아이를 세상에 꺼내야 할 에너지도 있어야 한다. 이게 자폐인을 키우는 부모들이 지쳐가는 이유일 것이다.       


센터에서 처음 만났던 선배 어머니가 그런 말을 했다. "지치지 말아요. 우리 날이 길어요." 그때는 그 말이 참 싫었다. 앞으로 어두운 터널만 있는 말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사이 작은 기쁨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DH가 처음 나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던 순간. DH가 나에게 질문을 하는 순간. DH가 처음 동생과 같이 상상놀이를 하던 순간. 일반 아이를 키우면 스쳐 지나갈 그 순간들이 더욱 반짝거리고 빛이 난다. 다만 외로운 시간들은 변하지 않고 계속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가 자라는 반짝반짝한 순간들이 있어서 또 오늘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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