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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 Jun 28. 2021

['S] 묘비명

내 삶은 당신들이 있어 행복했다.

-내 삶은 당신들이 있어 행복했다-

온 세월이 지나서야 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당신들에게 얘기하지 못했던 나의 세 가지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1.나는 생일을 싫어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가족을 중시했기 때문에, 특별한 날은 무조건 가족끼리 보내야했다. 그런 관념과 맞벌이라는 우리 집 환경이 겹쳐져, 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생일 파티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살이 되고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는 반대였다. 그래서 생일이 싫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해줄 때, 생일 케이크를 가져올 때, 선물을 건네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내 행동에 너무나도 큰 관심이 쏠리는, 어색한 내 생일을 싫어했다. 그럼에도, 남의 생일을 먼저 이야기하고 친구를 위한 선물을 고르는 일은 재밌었다. 그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상상하며 새로운 취향 저격 선물들을 사러 다니는 것은 행복이었다. 


2. 난 집안에서 ‘유교걸’이었다. 반대로 우리 엄마는 나이치고 굉장히 개방적인 분이셨다. 늘 나에게 본인들의 제사는 제발 지내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노동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본인들 까지라고. 하지만 난 그 말이 싫었다. 이렇게 일한 엄마를, 나를 위해 많은 걸 해줬던 아빠를 그대로 이 세상에서 잊히게 하기 싫었다. 내가 힘들 것 따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제사 때만큼은 그들을 깊이 생각하며 기릴 수 있을거라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적어도 3년에 한 번은 휴가를 내고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바쁜 와중에 욕을 먹어가며 낸 그 바쁜 휴가가 행복했다. 


3.내 꿈은 나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타인을 위한 꿈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누군가 나에게 강요했다는 것은 아니다. 내 꿈 자체가 타인들을 향해있었다는 말이다. 우연히 생업을 건 시위현장을 목격했던 나는 고3 때까지도 대통령이라는 꿈을 꾸었다. 꿈을  대통령으로 쓰면 추후 수시 지원 때 불리할거라며 혼이 났지만, 나는 꼭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타인을 행복하게 하려면, 결국 사회를 바꿔야 했고, 사회를 바꾸려 할 때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낼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생각했다. 약자를 위한 대통령, 그게 내 꿈이었다. 100명 중 30명이 불행하다면, 내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불행한 사람을 5명으로 줄였으면 하는, 딱 그 마음이었다. 후에 방향을 틀어 방송국 PD가 되기로 했을 때에도 이유는 같았다. ‘내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만큼은 모든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어. 행복하게 하고 싶어.’ 늘 내 꿈은 그렇게 타인을 향해 있었다. 행복이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본인조차 아끼지 않았던 내가 타인에게 무슨행복을 주었겠냐고 비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그런 행위가 내게 행복이었음을 한 번 더 깨닫는다. 나는 이런 나를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다. 나를 아끼지 않는다는게,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한 번도 나 자신에게 큰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고, 남들이 본인을 갉아먹는 연애를 할 때, 일에 집중하며 연애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시절도 있었다. 늘 내가 하려는 것, 내가 달려가고 싶은 것에 집중했다. 그것들이 결국엔 당신들을 향해 있었을 뿐. 


 그래서인지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 6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느냐며 꼭 나으실 거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당신들이 매우 고마웠다. 마치 생일날 케이크를 어색해했듯이 당신들의 위문 또한 어색했지만, 너무 감사했다. 덜 아파 보이기 위해 많이 웃고, 예전처럼 썰렁한 농담을 날리기도 했다. 내 삶의 끝에도 늘 당신들이 있어 행복했다. 

 위문왔던 당신들에게 미안하지만, 병원에 있는 6년 동안 정작 나는 죽기를 바랐다. 그 안에만 갇혀 있으면, 오로지 나만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신들을 생각하더라도 내가 이 몸으로 당신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게 오히려 나를 절망스럽게 했다.  

 그러니, 이 묘비를 찾은 고마운 사람들이여, 나의 죽음을 절대 슬퍼하지 않기를 원한다. 나를 잊지 않아 줘서 고맙지만, 나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나에겐 죽음은 오히려 나를 위한 것이었다. 무기력한 삶을 연장하는 건 내게 의미가 없었다. 이곳에 온 자들이여, 기쁜 마음으로 나를 맞고, 기쁜 마음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길 바란다. 



 당신들을 위해 내 묘비명을 직접 남기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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