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지영 Mar 01. 2019

라라랜드 (LALA LAND, 2016)

철지영의 철지난영화리뷰 #1. 라라랜드

라라랜드 : 꿈을 꾸는 모든 이들을 위한 동화같은 세레나데


처음이란 언제나 쉽지 않은 법이다. 항상 그래왔다. 내 경우엔 조금 더 유난스럽다. 그런 이유로 계정을 만든지 어언 반 년이 넘어가는 내 인스타그램의 피드는 아직도 공란이다. '처음'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려다 보니 애초에 시작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라라랜드'는 내게 여러모로 참 고마운 영화다. 라라랜드 정도면 앞으로 끄적여나갈 내 기나긴 이야기의 시작으로 한 톨 손색이 없다.

라라랜드가 내게 이토록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이유는 그것이 담고있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난 이전부터 하고 싶은게 참 많았다. 아프리카 횡단하기, 내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 제작하기, 직접 녹음한 커버곡들로 앨범 제작하기, 경영학과 출신이니 경영자 해보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해보기, 막걸리집 사장하기 등등 일일이 헤아리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열심히 꿈을 꾸다보니 어느날 문득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꿈을 꾸는건 공짜가 아니다.



그랬다. 놀랍게도 꿈을 꾸는건 공짜가 아니었다. 당장 주머니에서 돈이 새는건 아니었지만 '꿈'은 필연적으로 '시간'을 대가로 했다. 꿈을 꾸기 위해서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롯이 그곳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 말인즉슨 다른 무언가를 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연유로 안타깝게도 난 꿈을 꿔도 될 만한(?) 입장은 아니었다.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의 통념이 그랬다. 별 볼일 없는 4년제 지방대, 그마저도 흔해빠진 경영학과를 졸업한 나는 남들보다 갑절로 노력해서 한시바삐 취업을 했어야했다. 어른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래야 비로소 '사람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꿈은 취업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이력서와 자소서, 면접, 적성검사, 비정규직 수습기간... 그 모든 각고의 노력 끝에 본인의 자리를 찾아간 이들에겐 기꺼이 박수를 보내겠지만 적어도 내가 꿈꾸던 20대의 모습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문제는 혼자 성토해봐야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 내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느새 돌아보면 다들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없었다. 그 수많던 사람 가운데 나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처음엔 초조하고 불안했다. 시간이 지나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주제에 안 맞게 꿈을 꾸고 있는건가?'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왔다. 그런던 중 이 영화를 만났다.

두 사람은 각자 꿈을 꾸고 서로의 꿈을 사랑했다. 꿈이 달리지기도 하고, 꿈을 외면하기도 하고, 꿈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지만 끝까지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많은 곡절 끝에 두 사람은 꿈을 이루었다. 더 이상 이전처럼 서로의 곁을 지키는 사이는 아니지만 두 사람은 짧은 재회 끝에 다시금 서로의 꿈을 응원하기로 약속한 듯 눈빛을 나눈다.

라라랜드는 시종일관 두 사람의 꿈을 좇아가며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얼핏 로맨스 영화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그 본질은 '꿈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몇 번이나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것은 그저 등장인물 간의 오가는 대사였을 수도 있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였을 수도 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후자의 의미로 다가왔다.


특히 영화 속 '세바스찬'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꿈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그 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굳이 그것을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 본인의 잣대로 재고 평가하기 시작한다. '이게 돈이 되겠어?', '이런걸 왜 하는건데?' 나 역시도 무수히 많이 들었던 말들이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혼자만 꿈을 좇는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나와는 달리 세바스찬은 언제나 자기 꿈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냥 해보고 싶으니까...'라며 쭈굴대던 나와는 달리 세바스찬은 '왜 낭만을 나쁜 것처럼 얘기해?'라며 당당히 맞받아쳤다. 그 한 마디가 너무 멋있어서 이따금씩 내가 하는 일을 보고 '이런거 왜 해?'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게 '낭만적이잖아.'라는 낭만적인 미친놈 같은 멘트를 던져본 적도 있다.(생각보다 효과가 썩 좋지는 않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사운드트랙 'Epilogue'가 흘러나오는 영화의 마지막 5분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 부분에서 눈물까지 쏟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되새겨보면 마지막 5분 못지 않게 큰 울림을 선물한 장면이 있었다. 극 중 '미아'가 캐스팅 디렉터를 찾아가 오디션을 보면서 부르는 'Audition(The Fools Who Dream)' 사운드트랙은 아마도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잘 담아낸 곡이라고 생각한다. 꿈 꾸는 바보들을 위한 헌정곡인 이 노래는 아직도 들을 때마다 울컥하게 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놀라운 점은 미아의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꿈을 꾸는 다음세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함께 그 꿈에 열광해주는 누군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고 그들에게 도움을 받은 나로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이 곡의 의미가 남달라질 수밖에 없다.

라라랜드가 내게 던진 메시지는 꽤나 오랜시간 동안 진한 여운을 남겼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꿈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준 고마운 작품이다. 누군가 불확실한 꿈 앞에 망설이거나 흔들리고 있다면 주저없이 이 영화를 추천하겠다. '꿈을 꾸는 모든 이들을 위한 동화같은 세레나데' 라라랜드를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