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사회초년생의 일기.
일을 시작한지 11주가 다 되어가는 나는, 사회초년생이다.
나는 자아를 찾아가며, 잃지 않으며 살아가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다.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라고 외치는 친구들 중에 나는,
'나는 무대연출가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학생이었다.
지금도 무대연출가를 꿈으로 갖고 있지는 않으나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방송에서 일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 우여곡절 나는 창작을 하는 일을 직업으로 시작한지 11주가 되었다.
가끔 감당이 안되는 우울감에 노를 놓친 적은 있어도 배를 포기하고 나를 깊은 강에 내던진 적은 결코 없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조금씩 나이를 들어가면서
내가 세상에 조금 무뎌지고 조금씩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직장은 '내 것'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예전처럼 대단하게 '세상을 바꾸는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지만,
그 자신이 없다고 해서 해보지도 않는 건 평생 후회할 지 않을까해서 이 길에 올랐다.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내 대본을 쓰는데까지 5년정도가 지나야 한다는 건 알았다.
그 전에는 선배들을 서포트해서 선배들의 주도 아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남들이 이 과정을 힘들어 하는 이유를
입사 전의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 했다.
지금은 절절히 이해한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이 직업을 선택했다.
나에게 이 직업은 박봉이고, 복지가 안 좋고, 수도 없이 많은 단점이 존재하는 그런 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방송작가를 선택했다. 왜? 힘들어도 이 직업은
나를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의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내 인생에 주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솔직히 방송작가를 내 직장으로 선택하기 전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 그리고 내가 선택하고 싶은 이 불안정한 직장.
하지만 내가 10년 후를 보았을 때, 10년 뒤 안정적인 직장의 나는
여전히 사장을 위해서 일하고 있겠지만,
이 직장의 나는 10년 후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하고 있겠지. 라는 환상에서 이 직업을 선택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하니 나는 여기서도 소모품에 불과하다.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물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이 시간은 당연한 시간이고,
내가 당연한 일에 대해서 투정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입사 전 회사에서 디자인과에 다니는 언니가
같은 일로 투덜거릴 때 똑같이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또한 이해한다.
언니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한 회사의 디자인과에 들어갔지만,
1년이 넘도록 그림은 그려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시간들이 당연히 필요한 거라고 이해했고...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면서 들었던 가장 많은 걱정도 이런 걱정들이었고,
나는 이 시간을 내가 잘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믿었고, 타인을 설득했다.
결국, 나는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선택한 직장에서 살아남기위해 나를 지우는 과정을 보내고 있다.
퇴근 시간이 뚜렷히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퇴근 후에 뭘 배운다는 것도 어렵다.
저번에는 갑작스러운 야근으로 예매해놨던 공연을 친구에게 양보해야 했고,
그렇게 좋아하던 전시회와 공연도 남의 일처럼만 들리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를 아는 친구들은 입사 전의 나를 그리워하며, 안타까워 한다.
나는 뭐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의 고민을 하며 잠이 드는 것 같다.
퇴근시간과 복지가 일정한 일을 하며 그 이후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진정한 자아를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 라는...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요즘 친구들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는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