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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Sep 04. 2023

우리는 이 나라에 살아야해요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스트> / 오타쿠일기 10호 백업


어제(8월 24일) 오후 한 시, 후쿠시마 오염수가 원전 앞 바다에 방류됐다. 세계인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방류를 결정한 결정권자들은 '고작 이 정도로 안 죽는다'고 한다. 해봐야 몇십 년 더 사는 거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구가 지금 살던 대로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우리를 안심시킨다. 결국 이 드라마를 또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4년 전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 『체르노빌』이다. (더불어 국내에서는 전부 서비스 종료됐다는 슬픈 소식.)


당시 『체르노빌』이 공개되면서 방사능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제고해볼 수 있었다. 드라마는(과장된 부분도 없잖아 있겠지만) 방사능이 얼마나 위험하고, 정경유착과 관리자의 태만이 합쳐지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었다. 더 위험한 것은 방사능 그 자체보다도(물론 인체에 위험한 것은 당연하지만)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싼 사람들이 은폐와 거짓말로 일을 키운다는 사실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7등급 규모의 사고는 1986년도 체르노빌 이후 25년 만이다. 매년 오염수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얼마 안 된 일 같은데, 벌써 십 년도 더 된 얘기다. 러시아는 멀게 느껴지지만, 일본은 가까운 나라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일본 여행을 다니고, 일본산 과자나 음료의 원산지 표기를 찾아보는 일도 줄었다. 그래도 그냥 산다. 별수 없으니까. 가고 싶으니까. 그 나라 사람들도 갑자기 망했다는 얘기 없이 잘살고 있으니까.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몸에 방사성 물질이 한참 쌓였을지도 모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영향력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공포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 후속 대책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체르노빌 사고 역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방사능 수치가 그 정도론 높지 않다'고 허위 보고를 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마찬가지로 요즘의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대책도 그렇다. 정보가 없는 개인이 신뢰할 수 있는 건 정부나 관련 기관의 발표임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전 세계인의 안전을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실제로 그 지역의 상황은 어떨까? 가보지 않았으니 막연하게 유령 도시가 되었겠거니 상상하지만, 실상은 더 심각하다. 이때 『체르노빌』과 교차해서 봤던 것이 넷플릭스의 『다크 투어리스트 : 어둠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다크 투어리즘'을 주제로 뉴질랜드 제작진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위험하고 금지된 여행지를 탐험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백인 남성 중심의 관점이 너무 분명하고  역사적 관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제작된 부분이 많아 섣불리 보라고 추천은 하고 싶지 않다. 뒷목잡을 수도 있다.) 일본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후쿠시마에는 '방사능 투어'가 있다. 겉에서 보기엔 그 근방에서 살아가는 것도, 주민 귀환 프로젝트나 '먹어서 응원하자' 같은 캠페인도, 끔찍한 폐허를 여행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도 전부 한심한 일처럼 보인다. 다큐멘터리도 그런 시선에서 시작된다. 측정기를 쥐어주면서 '이 정도는 안전하죠'라고 말하는 가이드와, 주민 귀환을 독려하기 위해 음식을 파는 식당(그러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 아무도 그곳에서 살지 않는다), 사용기한을 한참 넘긴 채로 방치된 오염토 덮개를 본다. 


방사능 먼지를 덕지덕지 얹은 채 방치된 파칭코의 게임기를 보면서 생각한다. (꼭 들어가지 말라는 데를 들어가는 리포터 때문에 열 받긴 하지만.)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구나. 투어 참가자들의 측정기에 9.0이 넘는 수치가 찍히고(가이드는 투어 초반 0.2정도면 적당하다고 했다), 삐--거리는 알림 소리가 멈추지 않자 투어는 반나절만에 종료된다. "이런 곳에 어떻게 다시 돌아와 살라는 거죠?" "우리는 이 나라에 살아야 해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는 국민에게 선택권은 환상이고, 안보와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기득권의 이익에 휩쓸리는 것이 현실이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 어차피 망했는데 그냥 먹고 빨리 죽어야지 뭐. 싶은 마음도 든다. 살 만큼 살았으니(애도 안낳을건데) 괜찮지 않나, 는 생각은 어쩌면 자기기만이다. 미래세대는 있고, 우리는 아름다운 지구와 안전한 세상을 물려줄 책임이 있다. 당장의 권위는 없더라도, 지구환경과 공존하며 행복할 권리는 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멈출 수만 있다면 멈추어 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세상을 더 선하고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방사능과 잘 모르는 과학 앞에 무력한 어른이라도 그렇게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가 살던 자리에도 삶은 없고 먼지 흔적만 남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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