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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Feb 25. 2021

도시락을 싸다가

새벽까지 도시락 싸기

1월부터 아내가 작업실로 출근을 하게 됐다. 10개월가량 공동육아를 하며 매일 붙어만 있다가 떨어지니, 의외로 좋았다. 부부 간에도 거리가 필요한 법이니까.

내가 육아휴직 중이라 아내의 돈벌이는 매우 소중하다. 육아휴직 지원금을 받는다 해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태라 많이 쪼들린다. 경제적 부담을 아내 혼자 짊어지게 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다. 고민을 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1월부터 나는 아내의 도시락을 싸고 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코로나 19 때문이기도 하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게 괜찮을지 우리 부부는 도무지 확신이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도시락을 싸게 된 결정적 이유는 채식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지난 7월부터 채식(페스코)으로 식단을 바꿨다(나중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바꾸게 된 썰을 풀어보겠다).  

암튼 채식 덕분에 몸이 가벼워졌다. 건강검진 결과 이상이 없었고, 오히려 혈액이 매우 깨끗해졌다. 다만 불편한 게 많다. 도대체가 바깥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별로 없다. 외식의 절반은 거의 떡볶이다.

아내의 작업실 주변에도 마땅한 채식 음식점이 없다.  몇 달 있으면 나도 회사에 복귀할 텐데, 나 역시 점심 식사 해결이 최대 난제일 것 같다. 고민을 하다가 우리는 도시락을 싸기로 결정했다. 음식 갖고 머리 싸매지 말고 먹고 싶을 걸 직접 만들어서 먹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 걸. 도시락, 왜 이리 힘들어.

마꼬의 이유식과 간식을 매일 만드는 것도 벅찬데, 아내의 도시락까지 챙기려다 보니 주방에서 퇴근을 못한다.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면 새벽 1시. 만일 마꼬가 늦게 잠들면 새벽 2시에나 일과가 끝난다. 아이고 죽겠다. 회사 복귀하면 당장에 밀 키트를 사 먹어야겠다. 지금이야 궁핍해서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맛있게 잘 먹었다는 아내의 칭찬을 들으면 신기하게 피곤함이 싹 가신다. “내일은 뭐 먹고 싶어?” 분식집에서 메뉴 고르듯 골몰하는 아내의 표정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아이가 밥 잘 먹고 아내가 밥 잘 먹는 게 요즘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다. 사는 게 참 단순하다. 왜 이런 걸 여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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