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덕질
출처: Jtbc <뉴스룸>
누군가에게 이토록 빠져본 것이 얼마만인가. 30호는 육아로 바쁜 나의 소소한 일과가 되었다. 결승전이 끝나고 그가 출연한 라디오와 인터뷰 등을 대부분 찾아보았다. 그가 예전에 발매한 음악과 뮤직비디오, 라이브도 챙겨보고 있다. 무한 반복이다. 봤던 영상인데 또 본다. 매번 볼 때마다 감탄하고 때론 처음 본 것처럼 감탄사를 남발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니, 당연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에게 빠지는 게 뭐가 이상하겠냐만은 이상하게도 그의 음악만큼이나 태도에 빠졌다.
<싱어게인> 2라운드에서 30호는 이무진 씨와 함께 팀을 이뤄 정홍일, 김준휘 씨 팀과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30호와 이무진 씨 팀의 승리. 정홍일, 김준휘 씨 팀에선 한 명이 낙오가 돼야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는 룰이었기에 별 감흥 없이 보고 있는데 30호가 눈물을 훔치는 게 아닌가. 정홍일 씨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 친하게 지내서 그런 것 같다며 그의 눈물을 가볍게 두둔해주었다. 그때 나는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네, 하면서 30호를 웃어넘겼다.
그런데 얼마 전 당시 상황에 대한 비하인드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30호는 인터뷰에서 별안간 이상한 말을 꺼냈다.
“저는 승패.. 그런 거에서 평생을 도망쳐온 사람이거든요. 오디션을 하면서 그거를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일찍 그거를 할 줄은 몰랐어요. (중략) 누군가는 집에 가야 한다는 그런 게. 이기적으로 제가 슬퍼서...”
그가 말한 ‘그거’는 승패, 그러니까 누군가가 승리하면 누군가는 집에 가야 하는 구조를 말하는 것이었을 테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그 틀 위에서 지어졌다. TV 오디션은 그 정점에 속한다. 참가자들은 제작진이 짜 놓은 판에서 서로 경쟁하여 우승 상금 1억 원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있다. 그라고 그걸 모르고 오디션에 참가한 건 아닐 테다. 다만 자신의 승리가 누군가의 낙오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그것도 눈앞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에겐 도무지 어려운 듯했다. 그가 말한 대로 그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화제가 되었던 <치티치티 뱅뱅>의 편곡이 온전히 이해된 건 위와 같은 배경 때문이었다. 그는 이무진 씨와 맞붙게 된 3라운드에서 기묘한 편곡의 노래를 들고 왔다. 당시 그의 눈빛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눈빛은 저항이나 반항이 아닌 ‘선언’이었다. 그는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패배하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단지 상대인 이무진 씨에게 패배하지 않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의 상대는 더 컸다. 심사위원과 제작진, 그리고 대중이 짜 놓은 판에서 패배하지 않을 거라며 그는 노래로 선언했다. 원곡에는 없던 아래의 밑줄 친 랩 부분이 이를 증명한다.
“나를 조종하길 너는 바라니. 뭘 더더더.
원하는 걸 자꾸만 더 Telling me 더더더.
꼭두각시인 것도 잠시. 겁도 없이 난 노래하지.”
자연스럽게 랩을 하던 그는 세 번째 줄에서 일부러 피치를 올려 랩을 씹어 뱉었다. 그것은 음이탈을 가장한 강조였다. 그는 그 말을 꼭 뱉어야만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오디션이란 현장을, 아무렇지 않게 낙오자를 만드는 이 시스템을 그는 못 배겼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심사위원들의 판정에 의해 30호는 이무진 씨에게 패배했으나(나중에 패자부활전으로 부활), 대중의 반응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그의 기묘한 무대를 접한 대중은 그에게 열광했다. 왜 그 무대가 좋았는지 알 수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30호는 마냥 기뻐하지 않았다. 4라운드를 시작하기 앞서 그는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의 환대가 어리둥절하며 요행이 길다고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이상한 말을 하는데,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구체화시켜야겠다고 했다.
“제가 애매한 경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많은 걸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중략) 시청자 분들께서 저에게 약간이라도 좋은 부분을 보셨다면 이 무대 바깥에 정말 수많은 72호 가수들이 있거든요. 제가 운 좋게 먼저 왔다고 생각하고 제가 주단을 깔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승자독식의 오디션에서 어쩌다 보니 계속 살아남게 된 30호는 그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야 했던 것 같다. 어떤 악기를 쓰고 어떻게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보다 그에겐 자신이 왜 무대에 서야 하는지를 스스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그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본인의 ‘역할’이었다. 오디션 예선을 통과한 71명의 참가자 외에도 세상엔 수많은 72호 가수들이 있으며 지금은 목소리가 작은 그들을 대신해 자신이 목소리를 먼저 내보겠다는 것이었다.
본방송으로 그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순간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번엔 어떤 파격적인 무대를 보여줄지 승냥이처럼 기다리고 있던 내가 한없이 쪼그라드는 순간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저런 인터뷰를 들어본 적 있었던가. 도대체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았기에 겨우 무명을 벗어나 이제 막 조명을 받기 시작한 사람이 저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쟁취보다 타인의 거취를 걱정하고 둘러본다는 것. 이제 막 손에 인기를 쥔 사람에게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물론 그 후에 김이나 작사가의 조언대로 조금 어깨의 힘을 빼고 칭찬을 받아들이면서 대중과 이야기할 줄 알게 된 지금 그의 모습도 좋다. 이제야 인간 냄새가 나는 듯해서. 아니,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했다. 본인의 기쁨보다 타인의 슬픔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그가 이제 균형을 찾은 것 같아서.
그럼에도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 법이니, 그는 우승 후 첫 출연한 Jtbc <뉴스룸>에서 또다시 자신의 쟁취를 내려놓는 모습을 보였다. 함께 출연한 이무진, 정홍일 씨가 커버곡을 부른 것과 달리 이승윤 씨는 본인 노래를 준비해왔다. 커버곡을 벗어나 처음 부른 자작곡은 <기도보다 아프게>였다. 세월호를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그 노래를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불렀다는 사실이, 그것도 팽목항에서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뉴스룸>에서 그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한 인터뷰에서 이승윤 씨는 세월호 사건 이후 한동안 음악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의미가 없다고 느껴서 음악보다 인간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고. 그가 어떤 인간 공부를 했는진 모르지만 그 시간이 쓸모없어 보이진 않는다. 때론 태도가 작품이 되는 것처럼 이승윤 씨의 태도는 내겐 새로운 장르로 보인다. 타인의 슬픔에 흠뻑 빠져봤던 사람이야말로 타인을 구제하고 위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승자독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본인 스스로를 보란 듯이 구제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