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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Mar 11. 2021

별 거 없는 내 인생에

들깨 미역국과 출간 계약

  없던  인생이 바뀐   년이 지났다. 새벽부터 일어나 서둘러 아이의 이유식을 끓였다.   열두  삼백육십오 일을 꼬박 보낸 마꼬는 드디어 돌이 되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바퀴를  것이다.   사이 튼튼해진 다리와 손으로 마꼬는 밥을 내놓으라는   바지춤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익숙한 손길로 아이를 달래며   일을 재빨리 했다. 불린 미역을 잘게 자른 다음, 냄비에 참기름을 넣고 미역과 다진 소고기를 함께 볶았다. 물에 불린 밥을 물과 함께 넣고는 진죽이  때까지 저어주었다.

아이에게 주는  미역국. 크게 걱정은  했지만  정도로  먹을 줄은 몰랐다. 마꼬는 소중하다는  황홀해하며 숟가락을 받아먹었다. 어쩜 이리도  먹는지, 당연히 나와 아내를 닮은 것이겠지만, 마꼬는  먹는 것에 진심이었다. 무엇을 주든 언제나 신나게 먹는 마꼬 덕분에 나도 신나서 이유식을 만들곤 했다. 아내를 위한 식탁을 차리고 아이를 위한 이유식을 만들면서 그렇게  년을 보냈다.  생일날, 소고기 미역 진밥을 먹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조금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새가 없었다. 마꼬가 오늘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인 , 나와 아내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히고, 다시 한번 준비물을 점검했다. 우리는 마꼬에게 지금부터 어떤 일이 펼쳐질지 설명해줬다. 마꼬가 오늘부로  살이 되었고, 이제 엉아가 됐으니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다며 일단 축하를 해줬다. 마꼬는 영문도 모른  오렌지색 어린이집 가방을 등에 매고 집을 나섰다.  등원을 축하해준다는 핑계를 대며 포카도 같이 산책에 나섰다.

어린이집까진 걸어서 5. 우리 넷은 어린이집 앞에서 포즈를 잔뜩 취해 기념사진을 찍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조짐을 느꼈는지 마꼬가 긴장한 느낌이 역력했다. 여기저기서  등원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코로나 19 아니었다면 부모가 수업 참관을 하여 아이가  적응할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마꼬는 어린이집  앞에서 엄마 아빠와 헤어져야 했다.

엄마 아빠가 금방  테니 재밌게 놀고 있으라고 말했지만 선생님 품에 안긴 마꼬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마꼬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마꼬는 울며불며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가슴이 아팠다. 젖몸살을 앓듯 잠시 그랬다.

30 , 마꼬는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 우리 품에 안겼다. 엄마를 발견하곤 대성통곡하는 마꼬가 안쓰러우면서도 참으로 대견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볼에 뽀뽀를 하고 엉덩이를 토닥여줬다. 기분이  복잡했다. 그건 불과 1 전만 해도 결코 상상할  없었던 감정이었다. 아니, 상상할 필요가 없었던  감정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기존의  세계가 초라하게 허물어지고 다시 빵빵하게 팽창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럴 때면   없는  인생에 아직 뭔가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발이 벌벌 떨릴 만큼 두렵고  설레기도 했다.

지난 1  그랬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빌려  것처럼 새로운 삶을 살았다.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를 위한 식탁을 차리고, 포카를 돌보고 마꼬의 육아를 하며, 가끔씩 감상을 글로 적어 내려갔던 시간들이 나를 예상보다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마꼬의 생일 즈음엔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가을에서 겨울 즈음에 책이 나올 예정이다. 내가 요리책을 낸다니,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덕분이다. 지난 1  응원해주신 덕분에 용기를 얻어 계속 글을   있었다. 정말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정말 감사해요. 책이 나오면  인사드릴게요).




마꼬에게 미역 진밥을 끓여준 것처럼 아내에게도 미역국을 끓여주고 싶었다. 아이의 생일은 아내가 그토록 고생했던 날이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루 종일 아이를 챙기느라 제대로 식사를 못한 아내를 위해 들깨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먼저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불린 미역을 볶았다. 그 사이, 통들깨 열 큰 술에 물을 붓고 핸드 믹서기로 곱게 갈아주었다. 흐물흐물 볶아진 미역에 들깨 물을 넣으면 짐짓 다 됐다. 이제 다진 마늘과 국간장 한 큰 술을 넣고 끓이면 완성이다. 마꼬가 졸려해서 서둘러 밥을 차려야 했다. 비록 냉동밥과 반찬은 김치뿐이었지만 아내는 그것마저도 복에 겨워하며 미역국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순식간에 밥을 먹어치운 우리는 속전속결로 마꼬의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붙였다. 노랗게 타오르는 촛불을 마꼬가 신기해하며 바라봤다. 까만 두 눈 가득 촛불이 반짝였다. 즐거워하는 엄마 아빠를 따라 마꼬도 배시시 웃었다. 그 순간, 별 거 없는 내 인생에 찾아와 준 이 아이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문득 내 인생에 아직 뭔가가 남아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확신마저 들었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들깨가루는 각종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어서 건강에 매우 좋은 가루인데요. 다만 빨리 산패되는 성질이 있어서 개봉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드시지 않는다면 먹지 않는 것만 못해요. 그에 반해 통들깨는 시판용 들깨 가루에 비해 비교적 산패가 되지 않는다고 해요. 또한 확실히 맛의 차이가 있어요. 시판용 들깻가루로는 뽀얀 국물색이 안 나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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