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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훈 Jul 28. 2020

아버지

어제 아버지를 만났다.


우리는 자주 보지 않는다.


내가 집을 나갔을 때가 27이었을 것이다. 그전까지 아버지랑 친해지는 것이 어려웠다.


관계가 만들어진 이후 망치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나는 계속 나이를 먹었고, 점점 그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미친놈였는지도 알게 됐고,


지금까지 서서히 친해졌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북한산 근처에 있는 야외 카페에 함께 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화를 1시간 정도 나누다 어색한 타이밍에 그분께


"지혜를 부탁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진 것인지,

코로나 때문에 내 엔진이 강제로 멈춰 있어야 해서 답답함을 넘어 우울해진 건지,

무대에 서지 못해서 내 목적을 위해 살지 못해서인지,

늘 원했던 당연한 인정의 반의 반도 못 받았다고 생각해서 그 억울함이 너무 고여서 썩는 건지..


위의 모든 것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이 어깨를 계속 눌러서 무너져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다 아버지께서 이야기를 할 차례가 됐고

나는 들었다.


마냥 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 앞에서 우는 게 그렇게 나쁘지만는 않았다.

처음엔 막았지만 나중엔 꼭지를 살짝 열었다.


"네가 얼마나 힘들면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겠냐."


이런 류의 문장들이 귀에 따뜻하게 들어왔지만 딱 한 문장이 내 안에 오래오래 꺼져있던 스위치를 올려줬다.


"너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질 거냐, 잡아먹어야지."


라는 하나의 묵직하고 뜨겁고 붉은 한 문장.


나는 양팔꿈치를 상에 올리고,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이미 그 말을 듣고는 모든 것이 다시 맑아졌다.


내 안의 고통들은 여전히 팔팔한 채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한가운데에 노랑 불이 동그랗게 퍼지기 시작했다. 같이 존재해줬다. 그런데 아픔에 더 이상 발리고 있지만은 않게 됐다.


그 이후의 아버지의 말은 솔직히 잘 들리지 않았다. 빨리 돌아가서 작업하고 싶었다.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내가 알던 나의 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포털이 열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한동안 나의 화를 죽이려고 했다. 계속 깎아내고 깎아냈다. 오래 알았다. 이러다가 아예 다른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대략 70%는 성공했다.


화를 컨트롤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지만 연료로 사용하지 않거나, 무기로 써야 할 상황에 칼집에서 꺼내지 않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난 내 화를 다시 찾았다.


오늘 운동하면서 느꼈다.


시발 시발 거리면서 평소에 못 들던 무게를 계속 치고 쳤다. 화는 잘만 이용하면, 조종만 잘하면 아예 다른 경지로 사람이 올라가게 도와준다.


난 나의 가장 센 무기를 녹슬게 놔두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제 그 칼을 뽑아내 주셨다.


그 말 한마디에.


난 유치해.

난 어려.

난 뒤끝 쩔어서 다 기억해.

난 나한테 띠깝게 하는 새끼한테 관대하지 않아.



누가 이기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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