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도 못 해본 내집 마련을!

자식이 커간다는 것은...

by 라슈에뜨 La Chouette

딸이 집을 덜컥 샀다. 정말 덜컥이라는 말이 딱 맞다.


미국 생활 10년 차인 딸아이는 떠돌이 생활이 지긋지긋했다. "언젠가 집이 생기면..."이라는 말을 가끔 한 번씩 던지던 아이는 그날이 이만큼 가까이 와있었다는 것을 알았을까?


작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내던 아파트. 싸지 않았지만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좋아했는데, 막상 입주하고 보니, 멋있게 달려있던 창문이 사실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외식보다는 집밥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방이 부엌과 문으로 나뉘어있기는 했지만, 음식을 하면 그냥 온 집안에 음식 냄새로 가득 차서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나가서 좋다고 했는데, 집이 답답한 감옥 같이 느껴졌던 것 같다.


다행히 그때 차를 구입하였기에 아이는 정말 많이 돌아다녔다. 출장 핑계로 장거리 운전도 많이 했고, 6개월 만에 엔진 오일을 갈았다.


그리고 일 년이 되어오자 이사를 계획했다. 물론 기존의 아파트는 렌트비를 상당히 올리겠다고 했다. 돈을 더 주고 그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기에, 새로운 곳들을 보러 다녔다.


아파트도 보고, 타운하우스 스타일도 보고, 직장에서 좀 떨어져 있어도 창문이 있는 내 공간을 원했다. 그런데 참 운이 없었다. 구경하고, 고민하고, 계약을 하려면 그 직전에 누군가가 그 집을 먼저 계약해 버리는 일이 세 차례나 연달아 생겼다.


이사 나가야 할 날짜는 다가오고, 그러다 보니 가능한 곳들의 렌트비가 점점 올라갔다. 정말 이 비용을 내고 이런 곳에서 월세를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갈등이 오다가, 불현듯 집을 사면 어떨까 싶었다. 어차피 계속 미국에 살 거고, 그러려면 집이 필요하니, 딱 렌트비 수준의 월세를 내면 살 수 있는 곳을 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이 생각이 너무 무모하다 싶었다. 아이는 아직 영주권이 나온 것도 아니고, 신분이 불안정한데 여기서 집을 사도 되는 걸까 하는 온갖 걱정을 사서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기가 잘 알아보겠다며 여기저기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에서 한 부동산 업자를 만나게 된다.


자기가 집을 안 살지도 모른다고 했는데도, 괜찮으니 편안하게 상담받아보라고 해서 만나서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정말 모기지를 받을 수 있는지, 받으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은행에 알아봤는데, 놀랍게도 작은 집을 살 수 있는 정도의 승인이 나왔다.


아이가 대학 졸업한 이후부터 계속 신용도 관리를 열심히 해놨고, 작년에 차를 사면서 할부를 해서 갚은 것도 점수가 높이 올라갔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사는 곳은 비싼 도시가 아니었다. 집값이 상당히 낮은 도시였고, 이제 뜨려고 하니 지금 사놓으면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여러 가지 일이 바빠서 정신이 없었지만, 종종 집을 보러 다녔고, 괜찮다 싶은 작은 집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제시한 가격이 집에 비해 비싸서 마음을 접고 다 포기하려는 상황에 작은 타운하우스가 하나 나왔다.


먼저 본 집보다 더 큰데 가격은 더 저렴했다. 하긴 훨씬 지저분했다. 미국에서 집을 살 때 잘 알아야 하는 용어들이 있다.


adorable(사랑스럽다) = 작다

charming(매력적이다) = 오래됐다

lots of potential(무한한 잠재력) = 고칠 데가 많다

hidden gem(숨어있는 보물) = 외진 곳에 있다, 교통이 안 좋음


딸이 본 집은, 세 번째의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집이었다. 가격 제시를 했고, 저쪽에서 오케이를 했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다시 아이의 능력에 대한 심사가 들어갔고, 시간이 걸렸다.


아이는 그동안 임시렌트 2개월을 살았고, 차근히 상황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미국은 집을 구입하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부동산 업자가 아닌 변호사와 일처리를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게 해서 집의 열쇠를 받고 나서 아이는 꺅꺅 거리며 전화를 했다.


나는 평생 못 가져본 내 집마련을 딸이 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렇게 해서 이사 날이 잡히고, 기본적인 공사를 서둘렀다. 입주까지 날짜가 얼마 안 남았는데 할 일은 많았다.


노인이 살았던 집이었고 관리가 전혀 안 된 상태였기에 카펫도 엉망이었고, 벽에도 니코틴으로 완전히 지저분했기에 바닥 들어내고 새로 깔고 벽도 닦아내고 새로 칠 했다.


IMG_4592.jpg


상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할 것이 뻔하니 아이 이사하는 날에 맞춰서 비행기 타고 날아갔다.


정말 짐만 던져다 놓은 공간. 아직 정리도 어려운 이곳이지만 아이는 정말 짜릿해했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무엇을 하든 본인의 선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간 김에 5시간 거리에 있는 내 친구네 집에도 갔다. 엄마가 좋아하는 친구니 이번에는 꼭 만나게 해주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친구는 새집 장만 축하한다며 살림살이를 바리바리 싸줬다. 3시간 거리에 사는 남동생 부부가 와서 미국 집 관리에 대한 조언을 해줬고,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들을 손봐 주었다.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하는 날에는 딸아이의 친구가 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청소하고, 고치고, 쇼핑하고... 그렇게 두 주일을 함께 보냈다.


하나씩 하나씩 빈 공간을 채워 나갔고, 어설픈 부분을 메꿨고, 지저분한 부분을 치웠다. 처음에는 신발을 신고 다닐 정도였으나 점차 아늑한 집으로 탈바꿈을 해갔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어른이 되고 있었다.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고, 고민하고, 결정하였고, 많은 부분을 스스로 고치고 있었다. 드릴을 이용해서 나사를 빼고, 박고, 구멍 난 부분을 메꾸고, 다듬도 페인트 칠을 했다. 등을 달고, 초인종을 바꾸고, 점점 능숙해져 갔다.


"주말에 뭐 했어?"라고 묻는 말에, "집을 소유했어"라고 답하는 농담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집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이 들어가는데, 집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걸 기꺼이 할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아이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엄마 아빠의 가드닝이 강 건너 불구경이었는데, 이제는 자기 앞의 일로 다가왔다. 마당에는 뭘 심는 게 예쁠까, 뭘 심어야 사슴으로부터 살아남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의 집 고치는 지금 두 달째 진행형이다. 정말 많은 곳이 바뀌었고, 최근에 부동산 아저씨가 놀러 왔다가 깜짝 놀라며, 집이 넓어졌다고 말했단다. 이렇게 해놓으면 지금이라도 7만 불 올려서 팔아줄 수 있겠다고 농담을 했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아이가 집을 샀다는 자랑을 하려는 글은 아니다. 혼자 하나씩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무슨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더 이상 내가 관여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글이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순간에 아이는 다음 길을 찾아낸다. 나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결정을 하고, 나라면 절대 생각해내지 못할 방식으로 풀어낸다. 나도 젊은 시절에 참 무모했다 싶었는데, 아이는 나보다 더 무모해 보인다. 그래서 고맙다.


삶에 도전하고, 두려울 때 더 한 발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모습이 고맙다. 사실 누가 알겠는가, 이렇게 집을 산 것이 큰 도움이 될지, 아니면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일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순간순간을 살아갈 뿐. 그리고 그 순간에 감사하며 걸어 나간다.



딸네집 함께 놀러 가실 분은 이쪽으로 오세요~

https://youtu.be/6qKLbHErDXQ

keyword
라슈에뜨 La Chouette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2,613
매거진의 이전글자식이 다 컸다고 느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