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인데 수학학원은 처음입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딸은 지금까지 수학학원 한번 다니지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집에서 풀던 학습지로도 충분해서 보내지 않았고, 초등학교 2학년부터 5학년까지 제주에서 키우면서 자연스레 학원과는 멀리해도 좋을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수학학원 대신에 집 뒤 놀이터에서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고, 문제집과 씨름할 시간에 오름과 올레길, 한라산으로 나갔다. 그렇다고 학교 공부에 소홀하거나 홈스쿨링으로 공부를 안 한 것은 아니다. 하루의 분량을 정해서 매일 꾸준히 해나갔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서울에 돌아온 초등학교 6학년 처음 반에서 본 수학 단원평가시험에서는 75점이라는 인생 최저점수를 받았다. 제주의 학교가 큰 실수를 하지 않고,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면 100점이라는 점수를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는 난이도였다면, 서울의 단원평가는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 내신 쉽지 않은 문제들로 구성된 시험이었다.
서울의 초등학교는 제주의 학교와 다르게 준비물로 수학 문제집을 지참하게 했다. 별생각 없이 중간 난이도의 문제집을 들려 보냈더니, 반 친구들은 하나같이 최상위 수준의 문제집을 가져온 것을 보고 놀랬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고난도로 수학 단원평가를 시행하고, 문제집을 풀게 하는 교육이 있었기에 수학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학교와 집에서 하는 학습만으로도 충분히 수학학원 없이 초등학교 수학공부를 마쳤다.
문제는 중학교 수학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의례 다음 진도의 개념 문제집을 풀고 진행하던 집공부 방법이 중학교 수학부터는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중학교 1학년 1학기에는 초등학교때와 다르게 새로운 개념, 예를 들면, 소수, 유리수, 정수 같은 용어가 나오는데 혼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끝인 건가요.’
집에서 하던 수학공부는 난관에 부딪히면서 마무리될 뻔했으나 인강이라는 새로운 문물을 접하면서 집공부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무료로 제공되는 EBS 인강을 듣기도 하고, 한 단원에 몇 십만 원에 해당하는 사교육 플랫폼의 인강을 들으면서 중학교 2학년 1학기 수학진도까지 선행할 수 있었다.
인강과 문제집 풀기로 진행하던 중학 수학 집공부에도 다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혼자 문제집을 풀던 아이가 너무 어렵다며 문제집을 찢고 짜증을 내는 바람에 엄마인 나는 이제 집에서 하던 수학공부시대의 종말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대치동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수학학원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학원들이 돈만 내면 받아주는 곳이 아니라 일정 수준의 진도를 선행해야지만 레벨테스트를 볼 수 있고, 레벨테스트에서 기준을 통과한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치동 3대 수학학원 같은 곳은 중학교 입학생들에게 중학교 전 과정을 끝내고 고등과정을 시작하는 학생들만 받기 때문에 중학교 2학년 1학기를 겨우 마친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반은 없었다. 돈을 내고 보는 레벨테스트조차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워낙 학원이 많은 곳이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중등수학을 가르쳐 주는 의대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인기인 학원에 레벨테스트를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중학교 2학년 1학기까지는 잘 마쳤고, 수학감이 있는 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중학교 2학년 2학기를 새로 나가는 반에 다니는 학생들이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나 5학년이라는 것이었다. 한, 두 살 어린 학생들도 아니고 두, 세 살이나 어린 학생들과 한 반에서 수업을 받기는 우스운 상황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학원에서 아이를 위해서 새로운 반을 개설해 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인생 13년 만에 처음으로 수학학원에 가게 되는 것이다. 새로 개설된 반에는 아이와 여학생 한 명, 단 2명만이 함께한다고 하니 처음 수학학원을 시작하는 아이에게 맞춤옷처럼 적절한 구성이다. 다만 함께할 여학생이 성향이 잘 맞는 친구이거나 혹시 같은 중학교 학생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희망도 걸어본다.
대치동 인근에 살면서 왜 여태 수학학원이나 수학과외한번 안 시켰냐고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나에게는 20여 년 전 대치동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수학학원을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서울대를 나온 원장선생님이 나와 소수의 국악중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그 학원을 다니면서 난생처음 수업시간에 잠에 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소리가 유난히 작고 잡담을 하시지 않았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그 순간 졸음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수학을 배웠던 기억보다 졸음과 싸우며 그 어떤 내용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는 부끄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다. 몇 번의 수학학원의 기억이 있지만, 수학학원이 수학공부에 도움을 됐다는 경험보다는 고등학교 3학년 막바지에 엄마친구아들인 대학생 선생님께 받았던 수학과외가 수학에 대한 관심과 수학 공부 방법을 일깨우는데 도움을 줬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수학학원에서 많은 딴짓을 하고, 수학성적에 도움을 받지 못했던 부정적인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 수학학원을 불신하고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중학생을 집 공부로 가르치는 것이 더 이상 불가하다는 또 다른 경험을 얻고 아이를 대치동 수학학원에 보내는 첫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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