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그 간극의 리더
예술과 문화, 개혁과 변혁의 르네상스 시대는 중세의 끝을 알리고 근대로의 진입을 시작하는 문을 열었다. 로마 가톨릭교의 영향력에서 서서히 벗어나 개인주의 사상과 함께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유럽의 각 소국들은 대립과 통합을 반복하며 국민국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스페인. 영국이 중앙집권에 성공하였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연맹의 형태로 연방을 이루었다. 그러나 로마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진 이탈리아는 로마 교황의 세력과 주변 강국들의 이해로 각 도시지역이 소규모로 통치되고 있을 뿐 하나의 통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다. 이에 야심만만한 정력적인 마키아벨리는 당시 이탈리아를 통합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큰 체자레 보르자 ( 당시 교황인 알렉산데르 6세의 서자 )를 이상적 군주로 믿었으나 부친의 죽음으로 실각한 후 결국 내전 중에 죽고 만다. 마키아벨리 역시 피렌체의 국정에 참여하는 서기장으로 있었으나 쿠데타와 반란 등의 정세 속에서 파면당하고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 뒤 고문까지 받아야 했다. 출소 후 마키아벨리는 가족을 이끌고 산탄드레아로 낙향하여 농사를 지으며 집필활동을 이어갔다. 재미있는 것은 마키아벨리는 자신을 대단한 정치인으로 소개하며 끊임없이 권력자에게 편지를 보내어 자신을 등용시켜달라고 요청한 점이었다. 읽고 있는 <<군주론>>역시 당시 피렌체를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에 헌상되기 위해 주변 지인들을 닦달하는 내용의 뒷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권력자의 눈에 들어 입신양명하려는 사람처럼 느껴졌으나,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작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그린 이상향의 군주 밑에서 정치를 통해 자국을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강했다.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과 로마 교황의 세력 확장으로 흩어져 있던 이탈리아를 보며 마키아벨리는 현재와 미래의 고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힘이 없는 나라와 통합되지 않는 국민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항상 주변의 상황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고통받는 현실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치인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가 아닌, 현실적인 군주를 제시한다.
<<군주론>>의 군주는 내가 생각하기로 대단히 힘든 ‘직업군’처럼 느껴졌다.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되 미움받으면 안 되고, 신뢰와 의리에 대하여는 정직한 것처럼 믿게 만들어야 하며, 자신과 타인의 역량을 파악하고 이용할 수 있는 운과 자질을 겸비해야 했다.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기민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여야 하는데, 이런 능력을 모두 가진 군주, 아니 사람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군주란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역사와 책을 통해서 인식했던 군주는 이상적, 도덕적 존재였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독재와 폭군의 이미지를 포함하는 노련한 정치인처럼 느껴졌다. 이상적인 국가와 국민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비겁하고 경멸의 대상이 되는 자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국가와 국민은 이상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는 것 같다. 현실은 현실이고, 이상은 이상인 것이다.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유토피아는 될 수 없다.( 유토피아라는 어휘도 ‘어디에도 없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목적을 위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과 신의를 버리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하지만, 국가와 국민의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과연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만이 바람직한가라는 점에서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너무 거리가 멀다.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매달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문제를 소홀히 하는 자는 자신의 보존보다 파멸을 훨씬 빠르게 배우게 된다. 매사에 선을 내세우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몰락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코자 하는 군주는 시의에 따라 때로는 악하게 굴거나 악행을 저지르거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