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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Jan 02. 2022

김원영 <실격당한자들을 위한 변론>

김영하 북클럽 2022년 1월 도서 

출간된 해인 2018년에 읽고 3년만에 다시 읽은 책이다. 다시 읽으면서 느낀 건 그때도 참 의미있는 책이라 여겼는데 다시 읽어도 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 아무리 출간된 책의 유효기한이 몇 개월밖에 되지 못한다고 한탄해도 좋은 책은 시간이 흘러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달에 사회학 모임에서 이 책으로 독서토론을 했는데 1월달에 김영하 북클럽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헌법은 모든 인간의 삶은 존엄하고 가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과연 어떠할까? 1급 지체장애인인 변호사 김원영씨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는 ‘잘못된 삶’이라는 낙인을 안은 채 사회 밖으로 밀려나는 이들의 삶에 대해 저자 스스로의 경험을 토대로 그렇지 않다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변론하고 있다. 책은 ‘잘못된 삶 소송’이야기로 시작한다. '잘못된 삶 소송이'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으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의 한 유형을 말한다. 잘못된 삶을 실격당한 삶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무거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책에서도 평소에 인권운동을 하던 부부가 이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나와있듯이 누구나 자신의 일이 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어빙 고프먼의 상호작용 의례 이론을 원용하여 품격의 퍼포먼스와 존엄의 퍼포먼스를 나누며 존엄의 퍼포먼스가 필요함을 설명한다. 우리의 사회적 활동과 행위는 배우가 무대에 오른 것과 같은 일상속의 퍼포먼스가 되는데 이 퍼포먼스는 품격 대 존엄으로 대별된다. 품격의 퍼포먼스가 의전이나 정치행사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품격을 강화하거나 자신의 품격을 위해 타자를 도구로 삼는 행위임에 비해 존엄의 퍼포먼스는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배려하는 행동을 말한다.



 ‘품격’이란 사회적 지위, 위계, 권위의 정도에 따라 충실히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누리는 가치이며, 품격 있는 사회나 국가는 이러한 사람들로 인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인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품격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책을 읽으며 품격을 강조하는 이들이 속물성의 그림자를 동시에 지닐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존엄의 퍼포먼스에 대한 설명은 인상적이었다.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간의 대화인 일상의 상호작용을 연기나 무대에 비유하는 시각도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무대에 오른 두 사람이 공통된 목표에 다가가려 노력하는 동등한 주체라는 점에서 존엄의 퍼포먼스가 갖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책에 나온 사례 중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선택한 레즈비언 청각장애 커플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하였다. 2001년 미국에서 한 청각장애인 커플이 자신들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레즈비언이었는데 출산을 위해 청각장애인의 정자를 기증받기로 하였고 노력 끝에 5대째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남성에게 정자를 기증받은 후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 고뱅을 낳는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게 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 이들은 청각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차이일뿐이라며 반문한다. 청각장애가 아이에게 물려주기 좋은 특성이라고는 저자 역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해보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청각장애에 대해 공간을 더 넓고 깊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은 장애에 대한 다층적 시각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법과 제도가 보호와 치료, 복지라는 이름으로 인간 존엄의 가장 기본적 전제인 개개인의 고유한 서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한 사람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온전히 지닌 채 써온 인생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지켜봐줄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부분이다. 각자의 삶을 써내려가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저자’가 될 수 있다. 각자의 인생책을 쓰는 '저자'인 우리는 사소해보이는 선택과 취향, 선호, 삶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과 그에 대한 반응을 통합하여 정합적인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장애나 질병 등 여러 의미에서 잘못된 삶으로 규정된 사람들 역시 자기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삶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은 우리 스스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장애나 질병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 과정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유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 스스로 하나뿐인 인생의 저자가 될 수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저자성’은 침탈당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자기의 목소리로 개인적 삶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행위는 우리 사회에 소중하고 꼭 필요한 행위이다. 우리는 저자의 삶의 히스토리를 듣고 감응하며, 공감한다. 저자의 변론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저자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더 멀리 퍼져나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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