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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층주민 Mar 22. 2022

인디안 드림

내 인생 터닝포인트의 초석, 인도 봉사활동기


별다른 의욕도 없이 고등학교 시절 내가 얼마나 치열히 공부했는가의 결과로 얻은 수능 성적에 맞추어 서울 소재 한 대학에 입학했고, 5학기 내내 3점대 초반이라는 썩 자랑스럽지 않은 평점을 받으며 미래에 대한 별다른 기대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3학년 2학기, 개강을 일주일 남기고 나는 인생 첫 자취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없는 형편에 겨우 얻은 방이었다. 보증금 500만 원에 관리비 포함해 월세가 45만 원짜리 방이었는데, 나는 사실 그 당시 보증금 500만 원도 집에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얼굴도 모를 학교 선배가 갑작스레 해외취업을 하게 되어 계약기간이 6개월 남은 처치곤란 자취방을 월세만 받겠다며 학교 커뮤니티에 내놓으셨고, 마침 통학시간이 왕복 4시간에 달해 자취가 간절했지만 돈이 없던 내 니즈와 맞아떨어졌다.


집에는 긴 통학시간을 탓하며 나가서 공부를 열심히 해 학점을 올려야겠다고 큰소리쳤다. 큰소리치면서도 내심 더 헤이해 질 나 자신을 스스로 걱정했다. 그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위해 노력해 본 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6개월 간 스스로의 걱정이 무색해지리만큼 나는 의외로 열심히 살았다. 자는 시간 빼고는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시간과 돈이 아까워 끼니는 대부분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해결했다. 일주일에 한 번 집 근처 이마트에서 귤과 커피우유 한 묶음을 사서 집에 돌아가는 일이 그 당시 유일한 낙이었다. 독립해 나와 살면서 느끼는 점은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니 효심이 더욱 충만해지고 내 살 궁리를 열심히 찾아 해 나간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대학 입학 후 처음 열심히 살아본 3학년 2학기의 결과, 과에서 4등을 해 다음 학기 학비 일부를 장학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그동안 레스토랑이며,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할 노력으로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는 게 남는 일이었겠다 싶었다. 그리고 학교생활에 탄력이 붙은 나는 그 6개월의 자취 생활이 끝난 이후에도 못다 한 학점 세탁을 위해 열심히 도서관에서 살았고, 집 인근 초등학교에서 독서 교육 봉사활동도 했고 또 나름 취업스터디에도 참여했다.


‘마음만 먹으면 나도 이렇게 열심히 살 수 있는 종족이었구나’ 싶은 뿌듯함과 동시에 이렇게 아등바등 살다 취업을 한다 생각하니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밀려 올 즈음이었다.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 참가 모집 공고가 눈에 띄었다. 지원 가능한 여러 국가가 있었는데 굳이 인도였던 이유는 봉사활동 기간이 가장 길면서 참가비가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원서를 넣고 인터뷰를 준비했다. 영어 인터뷰가 걱정이었으나 간절함이 통했는지 교수님께서는 내가 준비한 부분만 콕 집어 질문해주셨고, 6명을 선발하는 자리였는데 나름 5: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뛸 듯이 기뻤는데, 그 와중에도 혹여 부모님이 참가비를 마련해주지 못하면 어쩌지 마음 졸였다.


인도로 출국 전 봉사활동 준비 커리큘럼은 탄탄했다. 주 1회씩 교수님이 지정해 주신 인도 관련 서적을 읽고 동기들과 그들의 문화와 경제 그리고 역사에 대해 토론했고, 현장에 가서 어떤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할지 정하고, 필요한 준비물과 나누어 줄 선물들도 구매하며 한 학기가 금세 지나갔다.


어느새 출국 당일이 찾아왔다. 미흡하지만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한 우리는 홍콩으로 떠나는 캐세이 퍼시픽에 몸을 실었고, 이후 홍콩 공항에서 첸나이 국제공항 그리고 첸나이에서 마두라이로 들어가는 국내선을 타고 약 24시간에 거쳐 마두라이 공항에 도착했다.


Chennai Domestic Airport 내부- 비교적 신공항이라 국제공항보다 좋은 게 함정


우리가 머물었던 도시 ‘마두라이’는 인도 남동부 지역에 있는 타밀나두 주에 속한 작은 도시인데, 인도 내에서도 전통적인 색채가 짙은 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그 이후 나는 같은 주의 주도인 첸나이에서 2년 남짓 거주했다.


Madurai airport


우리는 마두라이 소재 Lady Doak College라는 여대 기숙사에 머물며 홍콩, 일본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봉사 기관은 총 세 군데로 Mazhalai illam이라는 고아원, Bethshan special school이라는 특수학교 그리고 Mother Teresa라는 여성 전용 요양원이었다. 나와 동기들은 이 세 기관 중 하루 두 곳씩 번갈아 방문하며 봉사했다.


새벽녘 도착한 첸나이 공항에서 마주했던 숨이 턱 막히게 덥고 습하던 날씨 그리고 특유의 인도 냄새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낯선 인도인들이 낯선 우리를 쳐다보던 모습과 공항임에도 여기저기 개들이 널브러져 자고 있던 모습까지도.


이후 무섭던 첸나이의 모습과는 다르게 쨍한 날씨 속에 우리의 경계를 한층 풀어준 마두라이와 우리를 마중 나온 드라이버의 모습에 우리는 단 번에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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