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층주민 Mar 23. 2022

명상의 나라에서 마주한 클락션파티

마두라이의 첫 인상


마두라이 공항에서부터 한 달간 머물 Lady doak college라는 여대로 향하던 길이 잊히지 않는다. 30시간 가까이 잠도 제대로 못잤음에도 설렘과 걱정으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 학교에서 마중나온 밴에 몸을 싣고 고요한 시골 풍경을 감상하다 이삼십여 분이 지나니 눈보다 귀로 먼저 시내에 입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방에서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흔히 인도에 대한 이미지라 하면 유유히 흐르는 갠지스강을 보며 감상에 젖고 여유를 만끽하는 식의 장면들이 떠오르지 쉽지만 도로에서 만큼은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다. 


돌아온 이후 방영했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도로에서 운전자들이 클락션을 울리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고, 외국이었으면 바로 싸움이 났을 것이라 토론하던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속으로 '우리나라는 양반인데' 라 생각하며 또 한 번 인도의 길거리를 회상하기도 했다. 


밴 안에는 홍콩 친구 두 명도 함께 타고 있었는데, 첸나이 공항에서부터 그 친구들은 우리와 함께할 것을 눈치로 알아챘다고 했다. 우리는 그 친구들이 혼성(남1, 여1)이었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한 달간 생활할 일행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저 여행 중인 커플이라 착각했다.  


아무튼 조금 시끌벅적한 도로를 지나니 나름 한적한 곳에 위치한 Lady Doak College에 도착했고, 학교의 첫 인상은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다. 이 곳 학생들을 처음 마주한 우리의 리액션은 '와, 다들 너무 예쁘다'였다. 발리우드에 나오는 하얗고 이국적인 여성들(북인도 계열 아리안족)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였다. 


Lady Doak College 캠퍼스 내부


도착하마자 교문에서 우리를 한 달간 물심양면 서포트 해주었던 캐롤린(Carolyn)이라는 친구를 처음 만났다. 수줍게 인사하던 캐롤린은 우리를 숙소로 안내했는데, 방을 본 순간 한 달 간의 인도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상했다. 


일단, 숙소에는 이층 침대 4개와 벽걸이 에어컨 하나가 전부였는데 침대에는 안전 가드가 없었다. 하루 하고도 반나절 가까이 제대로 잠도 못자고 씻지도 못한 상태였기에 나온 예민함이었을까. 생각지못한 숙소 컨디션에 자다 떨어져 죽을 수도 있겠다며 다들 심각해졌고, 학교에 건의까지 했다. 학교 교직원은 'Are you guys babies?'라며 뭐가 문제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돌아갔고, 같이 갔던 일행 중 누군가는 격분하며 교수님께 현 상황에 대한 메일을 보내야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일년에 한 두어 번씩 보는 우리는 아직도 그 당시를 회상할 때마다 당최 뭐가 그렇게 심각했을까 이야기하며 깔깔 웃곤 한다. 


숙소에 짐만 간신히 내려놓고 바로 화장실을 들어갔던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신식 양변기와 정갈한 모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만...다른 것은 다 제쳐놓더라도 사용법을 모르겠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하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변기와 비슷하나 양 옆에 발 받침대가 있는 모양새로 물을 내리는 버튼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고, 오른쪽에 수도꼭지와 큰 양동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물에 동동 떠있는 작은 바가지가 전부였다. 내가 진짜 현지에 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당황한 나는 지나가던 학생에게 사용법을 물어봤고, 더 당황한 듯한 그 친구는 수줍게 사용법을 알려주다. 이후 나는 아샤(Asha)라는 이 친구와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데, 아샤는 나중에 그 날 본인도 내 질문에 뭘 어떻게 알려줘야 할 지 몰라 당황했다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자칫 실례로 느껴질 수도 있는 질문이었는데, 상냥하게 응대해준 아샤에게 고마웠다.


저녁에 우리는 우리가 사용할 샤워실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안내받았고, 샤워실로 할당받았던 작은 1인실 방 두개에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의 화장실에 그토록 반가운 양변기가 놓여있었다. 그렇지만 이후 우리는 점차 현지 생활에 익숙해져 내가 당황했던 그 화장실을 더 애용하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생리가 끝난지 이 주 밖에 안된 때였는데 또 생리가 시작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인지, 갑작스레 변한 환경의 영향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거기에 더해 인도로 날아오는 내내 기내가 추워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순탄치 않은 신고식을 거친 뒤에는 나머지 기간 동안 큰 잔병치레 없이 순탄히 지낼 수 있었다. 


Lady Doak College에서 지나고보니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기숙사 내에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당시 우리는 너무 쫄아있던 건지 전 기수가 알려주지 않았던 탓인지 현지에서 유심칩을 구매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 달 간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만 휴대폰을 사용하며 원치 않게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에 옮겼다. 학교 내 우리의 식당 겸 게스트 전용 건물이었던 건물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에만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험이다. 핸드폰 스크린 속에 묻혀 살지 않고 그 순간 순간을 오롯이 경험한 것이 아닌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었나 새삼 그리워진다.


처음에는 인터넷과의 접촉이 끊어진 삶에 적응하지 못해 틈만 나면 게스트하우스 건물 혹은 교직원실 앞 벤치에 앉아 와이파이 도둑마냥 야금야금 데이터를 써댔지만 그것도 금새 귀찮아져 쉴 때면 다같이 숙소로 돌아와 각자 침대에 누워 떼창을 하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며 자칫 무료할 수 있었던 시간을 훗날 추억할 이야깃거리로 만들어나갔다. 


첫 날 저녁엔 미션스쿨인 Lady Doak College 저녁 채플에 참가했고, 다소 낯선 식단에 까탈을 부리고싶지는 않아 조용히 바나나 하나만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인디안 드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