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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건 없지만 공짜는 아닙니다.

사이드 프로젝트와 돈


소규모 취향 모임, 태화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다.

태화방앗간의 주 수입원은 모임 참가비다. 참가비는 모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만 오천 원 언저리로 정한다. 음료 포함 가격이다. 울산에 코로나 확진자가 늘면서는 온라인 모임도 종종 했다. 온라인 모임은 한 사람당 오천 원을 받았다.


태화방앗간은 돈이 될까?

태화방앗간은 울산에서 나마 수익성 있는 커뮤니티라는 엄청난 말을 건너 건너 들 적이 있다. 그렇게까지 생각해 다니! 누구신진 몰라도 계신 방향으로 압도적 감사를 합니다.

누구신진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태화방앗간은 돈이 안 다.

간단한 계산만 해봐도 돈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계산을 안 해보고 시작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이다지도 현실감각 없는 운영자라니! 태화방앗간의 수익성을 과대평가해준 분께는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매출부터 제약이 있다. 모임 당 받을 수 있는 최대 인원 대여섯 명뿐이기 때문이다. 90분 모임 동안 참가자 모두가 자기 얘기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것도 신청자가 있을 때 이야기다. 최근엔 시국이 시국인지라 세명 정도로 원을 한해서 운영하고 있다.


매출에 비해 비용도 많다. 거의 대부분은 공간 대관에 쓴다. 태화방앗간은 일종의 공간이지만, 실물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야외 모임을 하거나, 공공 기관에서 운영하는 공간을 찾아다니며 비용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공간은 모임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단순히 비용만으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조도가 적당히 낮고, 찾아오기 편하고, 한적하고, 아늑한 공간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공간을 구하고 남은 돈은 모임에 곁들일 간식을 사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 쓴다. 축구공도 사고, 돗자리도 사고, 와인이나 맥주도 사고, 참기름이랑 고추장도 산다. 직접 비용이 아니더라도 브랜딩이나 마케팅에 한 책을 사기도 하고, 기깔 나는 인스타 피드를 위해 그림 그리기 강의를 수강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돈 많이 드는 취미다.


눈치챘겠지만 적자가 날 때도 많았다. 그래도 당장 만 원, 이 만원을 아끼느라 기껏 와준 사람들이 밑지는 기분을 느끼느니, 내가 손해를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사이드 프로젝트하는 사람이라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본업이었다면 작은 돈에도 훨씬 더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간신히 흑자가 나더라도 모임 기획, 물 제작, 모임 준비, 진행 등 모임 하나를 위해 며칠에 걸쳐 들이는 시간과 마음을 생각하면 열정 페이도 이만한 열정 페이가 없다. 

~사이드프로젝트는 근로기준법을 씹어 먹어~


참가비를 올리면 어떨까?

상품의 마진이 안 나오면 가격을 올려야 한다. 참가비를 올리는 것도 물론 생각해봤다. 쥐콩만한 내 배포로는 음료 포함 이 만원쯤 받으면 어떨까 싶었다. 결론적으로는 올리지 않았다. 아무리 참가비를 올려도 모임 참가 인원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 이상, 매에는 큰 차이가 없을 거란 계산에서다.


지원 사업도 고민했었다.

노잼 도시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선지 울산에는 문화기획 지원 사업이 많다. 모임에 들어가는 유형의 비용을 모두 지원해준다. 주로, 결제하고  영수증을 제출하는 식이다.   없고, 비용에 관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쉬운 점은 기획료에 관한 정책이 없다는 거였다. 참가비를 별도로 받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분명 공공을 위한 목적이겠지만, 홍보할만한 공간도, 상품도 없이 오직 기획 하나로 승부하는 태화방앗간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한 번의 모임을 온전히 만들어내기 위해 내가 쏟는 시간과 마음에 그 누구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모임을 만드는 일이 재밌고 보람차다고 하더라도 지속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긴 고민 끝에 지원을 포기했다.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 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싶다. 그는 86 아시안 게임 의상을 디자인했는데 당시에는 디자인료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서공장을 하나 지어서 의상 제작 마진을 남기라는 제안을 했다고들 한다. 그는 특유의 나긋하고 단호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근데 제가 그게 싫드라구요. 난 Design Fee를 받고 싶어요. 난 디자이너예요.
밀라논나는 국가 예산에서 최초로 디자인료를 받았다.


여차저차 남는 건 없지만 돈은 받는다.

얼마가 남든 간에 내가 만든 서비스에 누군가 돈을 지불한다는 건 늘 새롭고 늘 짜릿하기 문이다.  기분만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젠 진동 소리만으로도 참가비 입금 소식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웅-웅- 하고 짧게 두 번 울리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우웅! 하면 누군가 모임을 신청했다는 뜻이다. 카카오뱅크 계좌라 그렇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어쩐지 좀 머쓱하다. 누군가의 돈과 마음을 받고 내가 이렇게까지나 기뻐한다는 사실을 떠벌려도 될 일인가? 혹시 모르니 길을 가다가 진동 소리를 알아듣고 기뻐하는 사람을 발견한다 부디 모르는 척 해주셨으면 좋겠다.


돈 받고 일해야 오래오래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다, 주객이 바뀌었다. 오랫동안 잘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얼마나 많은 돈을 받는가 하는 건 그다음 문제다. 호기심은 넘치고, 뚝심은 부족한 나 특히 그렇다. 돈은 없는 뚝심도 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자체 공강을 밥 먹듯 했지만 출근은 꼬박꼬박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이 말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유의미한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더하기 빼기의 논리에서 벗어난 원동력도 분명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우웅! 하는 소리전달되는 머니 파워를 받아 좋은 모임을 오래오래, 잘 만들어 나가고 싶다.


, 조금만 욕심 내어 보자면 기획에 대한 대가를 울산광역시 예산으로도 인정받는 순간이 온다면 더 좋겠다. 


+)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지원 정책을 요긴하게 잘 쓰시는 분들도 아주 많습니다! 또, 정책이 점점 다양해지고,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 않은 미래에는 제가 원하는 부분도 반영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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