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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서 3일 : #6 가족사진이벤트

by 새로나무

서커스 관람을 마치고 나서, 큰 딸이 선물한 이벤트 함을 열어보았다. 헝가리 국회의사당과 어부의 요새를 배경으로 한 가족사진 촬영 이벤트, 그리고 다시 비엔나로 돌아가 마지막 밤 재즈클럽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한다. 소규모 음악공연 혹은 뮤지컬을 관람했던 기억이 아득한데, 그 모든 일들은 혼자 경험한 것이다. 이벤트(Event)는 특정 목적을 가지고 계획된 활동이나 행사를 의미하며, 특정 시간에 한 번만 발생하고, 그 순간을 기록하거나 경험으로 남기게 된다. 이번 유럽 여행 자체가 이벤트인데, 거기에 함께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라니!! 고마울 따름이다. 무계획적으로 걷고 경험하는 것과 특별한 계획의 결합!!

우선, 저녁 먹을 장소를 찾는다. 검색하고 평점을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그냥 직관에 의존하여 괜찮은 곳을 찾는 방식이 좋다. 괜찮은 곳에서 괜찮은 음식을 먹고 난 뒤 느끼는 성취감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가족사진 촬영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다. 성이슈트반 대성당 바로 앞 헝가리 현지식당 Belvarosi Lugas Eterem으로 향했다. 약간 쌀쌀한 날씨지만, 음식 먹으며 주변 풍경 즐기는 쪽으로 바깥 테이블을 택했다.


soprani 라거는 1895년에 만들어진 양조장이다. 100% 헝가리 보리를 사용하고 호프와 함께 옥수수 가루가 들어간다. 옥수수 하면 아메리칸 라거를 떠올리게 된다. 부드럽고 깔끔한 뒷 맛이 개운하다. 저녁까지 참고 기다린 보람이 상쾌한 맥주맛 안에 들어있어서 즐겁다. 따끈한 굴라쉬, 바삭한 치킨 슈니첼, 고소한 참치 샐러드를 곁들였다.


궁금한 메뉴가 있어서 Pike요리를 주문했다. 강꼬치고기 혹은 노던파이크(Nothern pike)는 민물꼬치고기 속에 속한다. 영국, 아일랜드, 동유럽 대부분 지역, 캐나다, 미국에서는 간단히 파이크(pike)라고도 부른다. 원래 15세기에서 17세기 유럽에서 사용된 긴 창무기를 뜻하는 걸 보면 뾰족한 외양과 닮아서 그렇게 불리는가 보다. 그런 외양과 달리 Pike는 엄청 식감이 부드러웠다. 우연한 선택과 기대를 빗나가지 않은 맛을 본 뒤에 밀려오는 만족감은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과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은 흑백에 컬러를 입혀 약간 촌스러워 보였는데,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것도 추억이고 그 시대의 문화라서 나름의 멋을 간직하고 있다. 그 시점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이 서로 말을 걸 수 있는 수단으로 글은 세월의 변화를 그렇게 많이 받지 않지만 사진은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을 말해준다. 거기 그 자리에 있었던 나는 48년 전의 나, 여기 나는 48년 후의 나, 그때는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고, 지금은 그때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사람의 일생으로 보면 엄청난 세월이 흘러갔지만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철이 덜 들어서 일수도 있고, 내 안의 정체성이 확실히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일수도 있다. 가족사진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찍었고, 굳이 사진관을 가서 찍은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잘 보지 않게 된다. 사진관이 아닌 곳에서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들이 훨씬 자주 보게 된다.


가족사진 촬영장소는 헝가리 국회의사당이 정면으로 보이는 강간 너 편이다. 11년 전 묵었던 노보텔 바로 옆자리다. 헝가리에 들렀다가 눌러 산지 15년 되었다는 작가에게 1시간 촬영권을 구매했다고 한다. 카메라 두 대를 어깨에 X자로 매고 등장하는 순간 뭔가 믿음이 갔다. 화려한 조명의 국회의사당과 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아 잠시 기다렸다가 촬영을 시작했다. 다양한 각도, 다양한 자세는 아마도 그동안 쌓인 노하우일 것이다. 거의 400장 가까이 사진을 찍는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제대로 자세를 잡고 몇 장 찍는 것이 덕목이었으나, 디지털 시대에는 많은 양의 사진을 찍고 그중에서 잘된 것을 선택하면 된다.


각기 다른 각도와 포즈 속에 그동안 일상 속에서 봐왔던 모습과 달리 연출된 멋진 모습 속에서 새로운 존재감을 느껴본다. 혼자 찍을 때, 그리고 어울려서 찍을 때 잠시 현실계를 벗어나 상상 속의 주인공이 된다. 저 멀리 화려한 불빛의 국회의사당 건물이 주인공의 훌륭한 배경이 되어 주었다. 괜찮은 사진을 건지기 위한 작가님의 재미있는 진행에 지루한 줄 모르고 촬영을 끝냈다. 곧이어 어부의 요새로 이동한다. 이곳은 앞서의 한 가지 배경과 달리 다양한 배경을 연출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전부 800장 정도를 찍었는데, 그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40여 장 정도 선택하면 그 사진들을 잘 보정해준다고 한다.

근처 SPAR에서 몇 가지 음식을 사는데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자 점원이 불친절하게 우리를 대해주었는데 알고 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다음날 그 가게에서 대부분의 물건을 철수하고 있었다. 가게 문을 닫게 되어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정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쓸쓸한 느낌이 밀려온다. 마음을 쓰건 행동을 하건 그것들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 둔다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부다페스트에서 이틀째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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