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질이 포함된 탄수화물을 먼저 먹게 되면, 몸에서 혈당 스파이크를 일으킬 뿐 아니라, 공복 시 쉽게 허기를 느끼게 되고 다시 당질이 포함된 탄수화물을 먹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채소를 먼저 먹고, 단백질을 먹고 나서 먹게 되면 혈당 스파이크를 덜 일으키게 되고, 허기짐도 덜하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는 온 가족이 적당한 탄수화물 섭취를 하면서도 허기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식습관의 변화와 여행의 즐거움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얻었다.
양배추 샐러드에 대파를 썰어 넣은 계란 프라이, 오이와 사과 토마토, 귤 등으로 만든 샐러드와 구운 토스트, 여기에 요구르트와 치즈, 햄으로 가볍게 시작한다. 평상시 아침을 건너뛰던 습관이지만 여행 중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한다. 평상시와는 다른 평상시 일상을 위해!!
파란 가을하늘, 옅은 색감이 점점 짙어져 가장 짙은 색깔을 보이는 지점까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 때린다. 하늘이 넓고 깊다. 다리를 지나며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를 멀리서 바라보니 낯설고 익숙한 고풍스러움을 느낀다. 지금 여기서 아까 거기를 바라보는 느낌이 새롭다. 모든 순간들은 스쳐 지나간다. 지나가는 아까 거기가 차곡차곡 쌓여 지금 여기 나를 만드는 자산이 된다. 한 순간도 허비하며 살지 않아야 하는데, 멍 때 리거나 우두커니 머물러 있는 상황도 소중한 순간이다. 꼭 무엇을 해야 하지 않아도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다.
헝가리 국립 미술관을 향해 길을 나선다. 거리가 제법 된다. 걸어가는 길이 다리와 머리에 새겨진다는 점에서 가볍고 즐거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리 중간에서 저 멀리 강 사이 섬의 실루엣이 아득하다. 헌 책을 진열해 놓은 곳에서 잠시 멈춰 우연히 잡은 책 중간에 그동안 못 보았던 렘브란트의 그림을 본다. 흑백 속에 빛의 느낌이 선명하다. 빛에 비친 인물의 모습이 화려하지 않게 눈부시다. 구체적이고 정밀한 묘사안쪽의 현실과 창문을 통해 비치는 빛의 환상적인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림을 얼른 사진에 담았다. 부다페스트도 어느 곳을 가나 벤치가 있어서 앉아서 쉴만하다. 자그마한 공원에서 두 딸 나란히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는데, 다정한 모습과 공원의 나무와 햇빛이 어우러져 한 편의 정물화를 만들어낸다.
강 저편으로 걸음을 옮기니 어느덧 어제 촬영했던 헝가리 국회의사당 맞은편이다. 다시 그 자리에 앉아 다들 같은 포즈를 취한다. 낮과 밤의 풍경이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듯하다. 작가의 작품에서 의사당 건물은 뿌옇게 처리되고 우리들 얼굴이 도드라지는데, 우리가 찍는 사진은 모두 선명하다. 뭐든 다 선명한 게 좋을 때도 있고 한쪽이 다른 쪽의 선명함을 위해 양보하는 풍경도 좋다.
제법 큰 규모의 SPAR에 잠시 들러 막내딸 선글라스를 샀다. 이제 햇빛도 문제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선글라스로 눈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자외선이 피부와 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선크림을 바르는 것이 좋다는 쪽과 여러 성분들이 오히려 피부에 안 좋다고 생각하는 쪽, 자외선을 선글라스로 차단해야 된다는 쪽과 모자를 쓰고 다니며 적당히 피해야 한다는 쪽 등 여러 의견이 엇갈린다. 나는 선블락을 안 한다는 쪽에 좀 더 기울었다. 선글라스는 쓰는 쪽으로. 이렇게 챙기기 시작한 게 6년이나 지났다. 백내장 수술을 받은 시립대 교수님의 조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눈부심도 덜하고 눈의 피로도 이전보다 훨씬 덜하다. 세상 하나뿐인 내 몸을 아껴 쓰는 지혜는 누구의 조언이건, 어떤 책의 조언이건 귀담아듣는다. 무한정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월요일, 헝가리 미술관이 휴관이다. 목표 지점 하나가 사라졌다. 플랜 B를 가동한다. 부다성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큰 딸은 오르던 도중 컨디션이 좋지 않아 강변 벤치에서 쉬겠다고 했다. 날씨가 맑아 부다페스트 시 정경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나우 강과 건물들이 선명하다. 부다 성(Buda Castle)은 13세기 중반에 헝가리의 벨라 4세(Béla IV) 왕에 의해 몽골 침입 이후 방어 목적으로 처음 건설되었다. 1541년부터 1686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이 시기에 성의 일부가 파괴되고 이슬람 건축 요소가 도입되었고, 곧이어 합스부르크 왕가가 성을 재건하고 확장하여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으로 발전시켰다. 2차 세계대전 중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이후 복원 과정에서 원래의 중세적 요소와 바로크 스타일이 혼합된 형태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칭기즈칸의 몽골이 유럽까지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접근전에 유리한 반월도와 그 긴 거리를 이동하는데 필요한 식량으로 말린 고기를 활용했다고 하는데, 헝가리가 희생양이었다. 2차 대전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끔찍했던 시간이 어떤 모양으로 지나갔는지 상상 속에서만 가늠할 수 있는데 잘 그려지지 않는다. 평화로운 다뉴브강의 잔잔한 물결 속에 녹아들어 있으리니.
어제 우리가 들렀던 서커스 공연장을 알리는 풍선이 선명하게 붉은 줄을 드러낸다. 이틀간 본 풍경이 벌써 익숙해졌다고…. 벤치에 앉아 잠시 쉰다. 바삐 다니지 않고 느리게 느리게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걷는 재미가 좋다. 성 뒤편으로는 아름다운 숲과 주택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으로 구부 되는 경계는 모호하다. 구시가와 신시가의 구분은 어디가 경계인지 모르겠다. 건물 혹은 사람 혹은 …. 경계를 짓는다는 것의 허망함과 경계를 짓지 않는 것의 자유로움에 대해 요즘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