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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악 여행

돈 헨리 <The Boys of Summer>

by 새로나무

일상 속에 잠겨있다가 문득 어떤 음악의 선율이 떠오른다. 바람과 비와 꽃과 사람들이 배경이 되어 내 정서 속에서 일어난 일이리라. 그 느낌 그 순간에 포착한 그 느낌 속에 그 선율이 불꽃놀이의 폭죽들처럼 뇌리에 명멸한다. 부드럽게 온몸을 감싼다. 기억을 더듬어 노래 제목이 떠오르고, 누구의 음악인지 생각난다. 또, 선율만 떠오르고 제목이나 가수가 잘 떠오르지 않아 괴로울 때가 있다. 그 음악을 듣고 싶은데, 선율로는 검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해하며, 계속 나를 학대하기도 한다.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낮으로는 약간씩 뜨거워지는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곧 더운 여름이 찾아오리라는 느낌 속에 이 음악이 떠올랐다. 반복적으로 떠오른 바로 이 노래.


<Building the Perfect Beast>는 돈 헨리의 두 번째 솔로 스튜디오 앨범으로, 1984년 11월 19일 게펜 레코드를 통해 발매되었다. 상업적 성공과 비평적 성공을 거둔 이 앨범은 부드럽고 성숙한 사운드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는 Henley의 가장 인기 있는 노래 중 하나가 되고 그에게 그래미상과 4개의 MTV 뮤직어워드를 포함한 수많은 상을 안겨준 "The Boys of Summer"가 포함된다. 롤링 스톤은 이 앨범을 리뷰하며 특히 사랑과 상실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을 담고 있는 곡으로 "The Boys of Summer"를 꼽았다. 롤링 스톤은 이 앨범을 1989년 "80년대 최고의 앨범 100선" 목록에서 73위에 올렸다.



Don Henley는 이글스(Eagles)의 드러머이자 보컬로서 이미 1970~80년대 미국 록 음악의 중심에 있었지만, 그의 솔로 활동은 보다 내면적이고 사색적인 색채를 띠었다. 이글스 시절의 서부적 감성과 어른들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노래하던 그가, 솔로에서는 시간의 흐름, 상실, 후회, 그리고 존재의 본질적인 쓸쓸함을 정교하게 포착한다. 특히 The Boys of Summer(1984)는 그의 음악세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빌어, 청춘의 한순간과 그로부터 밀려오는 상실감을 동시에 노래하는 이 곡은 시간의 비가역성(irrevocability)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이 곡은 1984년 당시로서는 상당히 세련된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전통적인 록 기타가 결합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도입 부분의 서늘하고 시원한 드럼머신의 리듬과 기타 리프에 이어 신세사이저의 패드가 회상의 공간인 해변을 만들어준다.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이라기보다, 여름의 끝자락에 불어오는 서늘한 저녁바람 같은 정서를 준다. 이는 가사에서 이야기할 "과거에 대한 회상"을 위한 심리적 무대를 만들어 준다. 벌스는 최소한의 멜로디 라인으로 차분히 시작된다. Henley의 목소리는 나직하지만 담담하게, 그러나 내면 깊은 곳의 울림을 전달한다. 신시사이저와 리듬 섹션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Henley의 보컬을 뒷받침하며 정서적 공간감을 확장한다.

"I can see you — your brown skin shining in the sun" 여름날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펼쳐진다. 이 부분의 멜로디는 상승하고 확장되며, 청자에게 감정의 폭발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청량함은 결국 덧없음과 이어진다. "After the boys of summer have gone"이라는 가사는 모든 아름다움이 끝남을 상기시킨다. Mike Campbell (Tom Petty and the Heartbreakers의 기타리스트)이 연주한 간결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기타 리프가 삽입된다. 여름 하늘 위로 부유하는 외로운 갈매기처럼, 이 기타 소리는 한때 찬란했으나 이제는 사라져 버린 시간의 파편을 떠오르게 한다. 기타의 음색은 차갑고 약간 메탈릭 한데, 이는 곡 전체의 차가운 색조와 맞물린다. 이 곡의 마지막 여운은 바로 애잔한 기타 리프가 담당한다. 반복적이지만 점차 사라지는 리프는 마치 여름 해변의 파도가 멀어지듯 멀어져 간다. 감정의 잔상만이 남고, 청자는 잃어버린 청춘과 시간이 남긴 공허 속에 머물게 된다.

The Boys of Summer의 가사는 단순한 여름 연가가 아니다. 그 안에는 상실된 사랑, 지나가버린 청춘, 그리고 미국적 풍경에 깃든 회한이 섞여 있다. 주요 테마를 보면 "Nobody on the road, nobody on the beach" 텅 빈 여름의 해변 — 잃어버린 시간의 상징 "Your brown skin shining in the sun" 한때의 사랑과 청춘의 생생한 이미지 "Those days are gone forever" 비가역적인 시간의 흐름 "I can tell you my love for you will still be strong after the boys of summer have gone" 변치 않는 사랑의 고백과 덧없는 여름의 대비. 이처럼 여름이라는 이미지 속에 청춘의 찬란함과 끝남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으며, 음악적 편곡 또한 이러한 이중성을 훌륭히 표현한다. 이 곡은 여름이 줄 수 있는 청춘적 에너지와 동시에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덧없음과 상실감을 모두 담고 있다. 때문에 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한 복합적 감정을 가장 탁월하게 그려낸 곡 중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마지막 기타 리프는 여름 저녁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잃어버린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여운을 남긴다. 애잔한 여운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살짝 긁다가 조금 더 깊이 더 깊이 긁어 마음 깊이 가라앉아있던 기억의 파편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수면 위로 올라와 출렁이는 기억의 파편들 속에 살짝 눈가가 촉촉이 젖어든다. 처음 들었을 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태백에서 강릉으로 유학을 가서 외로움과 고독 속에 대학입학을 준비하며 치열한 경쟁을 헤쳐나가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릴 때 잠시나마 위안을 주었다. 그 음악 속에 잠시 머무는 동안, 전화가 아직 설치되지 않았던 태백집에서 무언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건 아닌지, 이대로 성적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대학을 제대로 진학하지 못한다는 두려움과 같은 차가운 느낌들을 떨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며 자료를 찾고 음악을 뒤지던 중,

유튜브 뮤직에서 뜻밖의 음악들을 만났다.

<Summer Rewind>라는 앨범,

모두 괜찮은 노래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고,

여름으로 진입하는 것이 즐거운 일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여름 이들의 음악과 함께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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