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하고 유서 깊은 장소들이 즐비한 곳, 비엔나 중심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를 비롯한 빈 분리파의 성지가 되어버린 미술관이 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의 그림을 만나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두 사람의 인연의 깊이가 어디쯤이었는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각기 다른 그림 스타일과 그림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우주와 지구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다 잠깐 살다가는 짧은 삶 속에 긴 여운을 남길 작품들이 대신 말하게 하고 그들은 지금 여기에 없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비엔나를 만나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괴테의 파우스트,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수많은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의 결과물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그동안 내가 배웠던 그 조각조각의 기억들을 하나의 얼개로 묶어내는 또 다른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2019년 방문과 1주일 전과 오늘이 다른 이유가 거기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경험들을 돌아보고 거기에 새로운 경험이 모래 사이로 스며드는 물처럼 흘러들어 가 내 삶이 한층 커지고 넓어지고 깊어지는 계기라는 선물....
사전에 공부를 하지 않고 뜻밖의 작품을 만나게 되면 기쁨은 배가 된다. 카를플라츠(Karlsplatz) 인공 연못 바로 앞에 위치한 헨리무어의 Hill Arches. 수많은 예술작품을 어떻게 다 볼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직관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어떠한 설명이나 사전 공부 없이도 그 예술작품을 내 방식으로 이해하고 감상하고 가슴속에 새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카를 성당과 광장과 어울릴 수도 있고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자세히 다가가 곡선과 조형적 짜임새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
VOTA MEA REDDAM IN CONSPECTU TIMENTIUM DEUM. 이 구절은 시편(Psalm) 22장 26절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서원을 채우리라" 혹은 “내 서원을 주의 경외자들 앞에서 갚으리이다” 서원(誓願, Votum)은 일상적인 ‘소망’이나 ‘바람’과는 구별되는, 훨씬 더 엄격하고 의례적·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라틴어 votum vovere = '맹세하다, 서약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맹세', '서약', '헌납(헌신)'이라는 뜻을 가진다. 신이 나 성인에게 조건부 약속을 하는 행위로 특정한 은혜(예: 병 낫기, 전쟁 승리, 재앙 회피)를 얻으면, 이에 상응하는 행위나 헌납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으로 일종의 계약적 의례로 이해할 수 있다.
카를 6세 황제가 1713년 페스트가 물러가길 기원하며 성 카를 보로메오에게 헌정하는 성당을 지을 것을 서원(votum)했고, 페스트 종식 후 그 서원을 지켜 짓는다는 의미이다. 황제가 신에게 맹세한 서원을 이 성당으로써 이행했다는 상징적 선언이기도 하다. 1713년 대규모 페스트가 비엔나를 덮쳤을 때 카를 6세가 “페스트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카를 보로메오에게 기도하며 이 성당을 서원했다. 카를 성당 정면의 양 기둥(base relief inscription)에는 또 다른 헌정 문구가 라틴어로 있다. DIVO CAROLO BORROMEO PATRONO CONTRA PESTEM.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수호성인, 성 가롤로 보로메오에게' 이 성당이 단순히 카를 6세의 개인적 서원 건축물이 아니라, 페스트에서 구해준 ‘공적 감사’의 상징으로 지어졌다.
1576년, 밀라노에 흑사병이 창궐하자 가롤로 보로메오는 병자들을 돕고 시신을 매장하는 데 여러 가지 도움을 제공하였다. 귀족들이 흑사병을 피해 모두 도망쳤을 때에도 가롤로 보로메오는 위험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밀라노에 남았다. 흑사병이 유행하는 중에도 그는 병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위로하며 병자성사를 주었고, 식량을 나누어주었으며, 예방법을 주지 시키는 활약을 하였다. 결국 흑사병은 잠잠해지고 밀라노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보로메오는 오랜 극기와 과로로 점차 체력이 소모되어 나중에 가서 간헐열에 걸려 은퇴 후 피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1584년 11월 3일 밀라노에서 46세로 선종하였다. 그가 선종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주님, 저는 여기 대령했나이다.”였다. 그는 유럽에서 페스트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공경받았다.
2019년 12월 비엔나에서 돌아오자마자 코로나가 전 세계를 위협했다. 코로나 시기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를 읽으면서 우리가 겪는 일을 옆에서 생생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페스트는 유럽에서 대략 1/3의 목숨을 앗아갔다. 진단키트도 백신도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스러지고 누군가는 그 스러진 사람들을 옮겨 처리하는 고통이 매일매일 조여왔을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곳에 의지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지향점을 발견하게 된다. 보로메오의 이야기 속에 코로나 초창기 용기 있는 삶을 선택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제임스 마호니를 떠올리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제임스 마호니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은퇴를 뒤로 미루고 환자들을 돌보았다. 62세를 일기로 작고한 의사 제임스 마호니.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뉴욕주 브루클린의 유니버시티 병원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제임스 마호니는 올해 62세로 은퇴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의사들은 대부분 은퇴를 선택했다. 같은 의사인 그의 형도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은퇴를 택했다. 그러나 그는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NYT에 따르면 그의 병원은 다른 많은 공립 병원들처럼 충분한 보호 장비를 갖추지 못했고 전문 인력도 부족했다. 그는 병원에 남아 코로나 환자들을 진료했다. 밤에는 인근 킹스카운티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봤다. 지난 4월 중순 마호니는 열이 있었지만 재택근무를 하며 원격으로 환자들과 상담했다. 4월 20일, 걸을 수조차 없을 때 그는 자신이 일하던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엿새 뒤 그는 혈액 산소 공급 장치가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4월 27일 그는 숨졌고, 다섯 명의 동료들이 그의 임종을 지켰다.
성당에서 예배가 진행되고 있고 <No Visit>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이들의 일상 의례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잠시 이 성당에 쌓아놓았던 사람들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껴본다. 나는 누군가의 에너지, 누군가의 희생, 누군가의 헌신에 힘입어 살고 있음을 그리고 성당안에 가득한 평안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상상속에 잠시 머무른다.
오페라하우스 맞은편 스타벅스 매장을 무료로 이용했다. 스타벅스를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스타벅스가 취하고 있는 개방적인 정책에는 호감이 갔다. 소비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좌석을 이용할 수 있고, 어딜 가건 돈을 받는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그 수혜를 받았다.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공간에서 두 세 단계 더 높이 올라가 사회 기반 시설로 상승했다. 그동안 축적한 자본이 뒤받침되어서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사업 수완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소비를 안 하겠는가? 오히려 더 많은 고객들을 불러내는 이중의 전략이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