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하고 아름다운 Mar 30. 2023

어느 날 내가 싫어졌다.

우울증에 걸린 이유

자기혐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쓰게 된 건 아마도 지하철 스크린도어앞에서있는 나를 보고 확 뭔가 치밀어 올랐을 때부터였던 거 같다. 유리에 비치는 사람은 너무 못생기고 뚱뚱하고 초라한 데다 죽상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기가 싫었다. 그럼 바꾸면 될 거 아니냐고? 그러지 못해서 싫었다. 왜 그러지 못하는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말 같은 걸 받아들이면 될 것 아닌가?

나는 어디에도 서지 못했다. 그냥 추레한 내가 싫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원하는 내 모습과 현실의 나와의 거리가 너무 커서였던 거 같다.

내 외모는 평생 그래왔는데 그날의 불씨였을 뿐이다.


나의 쓸모가 없어지고, 나를 원하는 곳이 없어지고, 내 효용가치는 무용하고, 무용한 나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기엔 통장이 늘 비어있었다. 여러 가지 일로 바빴던 거 같은데, 늘 실패하거나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반복되며 프리랜서로서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수정에 수정, 그러니 번번이 마감을 맞추지도 못하기를 반복에 반복하고 시간을 주어도 결과물이 발전되기는커녕 수정이 늘어갈수록 나는 말귀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대단히 특별한, 누구와도 대체불가능한 작업물을 가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일처리가 엉망이면 일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이 자꾸 엎어지거나 말도 안 되게 계약이 파기되면 그냥 괴로워하며 울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그리고 계약금 같은 다시 돌려줘야 할 돈을 메꾸기 위해 또 돈나올구멍을 찾아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들여다 본들 근본적인 내 능력이 바뀌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무작정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할까 울기만 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것 같다.

   

그렇게 괴로움에 갇혀있을 시간에 개인작업이나 다른 방향을 모색하면 좋았을 텐데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캄캄했을 뿐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양 옆을 볼 여유는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무기력해졌다. 실제로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되었다.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힘이 없으니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먹먹하게 소리가 멀어지고 나는 스스로 나의 관으로 들어갔다. 밖은 시끄러우니 조용하게 누워있었다.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나는 이렇게 조용한 선택을 하고 망가져가고 있었다. 생활이 엉망이 되고 쓰레기가 쌓여갔다. 하루종일 한일이 없어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불안이 머리를 뒤덮어 잠을 자지 못했다.  잠을 못 자니 피로했고,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와 내 주변 환경을 가꾸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내 모습을 직면하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혐오스러운 마츠코'가 거기에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못하는, 아무것도 아닌 내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게 당연한데 어쩌면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대단한 나를 기대했다 실망해 더더욱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싫어졌다. 자기부정의 감정이 스스로를 지배하면서 우울증이라는 게 이미 나를 파고들었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을 좋아했던 적이 있을까? 그게 언제였을까?

그걸 찾아야 우울증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데 말이다.

아직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왜 스스로 이 늪에 빠져서 나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여태 헤매고 있는지 알기위해 

우울증에 걸린 이유부터 알아야 할 거 같았다. 다시 그길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 


작가의 이전글 삶의 의지가 강한 자살사고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