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 ugly, that's okay 'cos so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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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문제로 페이스북을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서 거기 써놨던 글을 좀 시간날때마다 옮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몇달 전에 쓴 글이긴 하지만, 2시즌도 나온다고 하니.. 아무튼.
오징어 게임은 상당한 흡인력을 가진 컨텐츠 입니다. 기대보다 훨씬 즐겁게 봤고, 감독 인터뷰를 봤는데, 시즌 2는 지금은 상상도 못하겠다 라든지, 이가 빠졌다든지 하는 얘기가 있던데, 만들면서 진짜 꽤 고생하셨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프로덕션 사이즈가 큰 데 놀랐고, 구석구석 꼼꼼하게 만들어져서 놀랐어요. 뭔가가 세계적으로 굉장한 성공을 하려면, 아무튼 잘만들고 봐야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1.
여혐 논란이 있습니다. 당연히 있을만하고, 감독은 여혐이 아니라고 인터뷰 했던데, 당연히 아니라고 했을것 같아요.
음..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것 중에 하나는, 평범한 우리들은 남녀가 (대충)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여혐을 안하는 보통사람이지만 매우 나쁜 생각 (일베 같은) 에 물들면 여자들을 다 죽이고 싶다식의 혐오를 하게 된다. 는 아이디어 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은 어떻냐 하면, 남성위주의 사회가 수백년간 유지되고, 그 전통에 의해 교육받고, 그 논리에 의해 운영되어 온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들은 가만 두면 그냥 여성 혐오적인 아이디어들을 갖게 됩니다. 여자들은 연약하고, 터무니없는 결정을 하고, 실은 세상에서 그렇게 중요한 존재는 아니라는 식으로요.
이 드라마는
(스포일러)
재수없는 새끼와 동반자살을 하는 플롯 디바이스로 여성 캐릭터를 활용한다든지, 남자 주인공의 분노를 이끌어내기 위한 트리거로 주요 여성 인물의 죽음을 낭비한다든지,
(스포일러 끝)
전체 드라마에서 긍정적인 역할로 제대로 기능하는 여성은 엄마/할머니 밖에 없다든지 등등 너무 전형적으로 딱히 생각을 바꿀 계기가 없던 남자들이 가지는 미소지닉한 패턴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감독이 여자 캐릭터들을 남자 캐릭터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나요? 이건 감독이 나쁜 사람이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이게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상태이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아무 생각 안하고 있으면 대충 그 언저리에 모여 있는 존재들 입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에요.
2.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거슬리는 면 하나 없이 완벽한 여성 서사가 될 수 있었던건, 45년생 할아버지 조지 밀러가 더하고 뺄거 없는 완벽한 페미니스트여서가 아니라, 나는 이 일을 제대로 못할거라고 생각하고, 학대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가진 여자들의 생존과 연대의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극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이브 엔슬러를 자문위원으로 모셨기 때문이죠. 조지 밀러는 엔슬러에게 배우들과 끊임없이 이야기 하게 하고, 작품에 대해 토론하고 심지어 촬영장에 모셔놓고, 문제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얘기해달라고 할 정도로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함의 기준을 갖는 건 이런 것이지요. 꽤 까다롭고 짜증나는 일이지만, 제대로 성공하면 폭력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아카데미와 박스오피스를 동시에 싹쓸이 할 수 있는 작품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어쩌면 위의 얘기와 연결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자본주의적 기회와 경쟁. 인간과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데이트된 세상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다보니, 정교하고 지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안듭니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제일 나빴는데, 갑자기 휴머니스트가 된 기훈의 모든 행동이 잘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왜 그 미친 노인네는 갑자기 한명의 의인을 찾고 난리인 것이며...
꽤 중요한 순간 중에 하나인, 프론트맨이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이 '배우' 나오니까 놀랐지?' 의 깜짝쇼에 의존합니다. 저는 이 문제 역시 메시지의 결핍이 가져온 문제가 아닌가 싶었어요. 진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결정하지 않은 채, 이야기가 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재료들을 흩뿌려놓고 아는 맛으로 대충 버무린 느낌? 당연히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숨쉬듯이 하고 있는 여혐요소, 차별 요소들이 아무런 가림막 없이 드러나게 되지 않았을까요?
봉준호나 김기덕은 둘다 영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잘 만드는 사람이지만, 왜 봉준호는 헐리웃에서 같이 작업을 하고 싶어하고, 김기덕은 작품을 만들면 대충 박수나 쳐주고 돌려보냈을까요?
오징어 게임은 리메이크 판권이 팔릴테고, 아마도 더 나은 계약 조건으로 시즌 2가 나오겠지만, 감독은 마블 영화를 감독해 달라는 제의를 받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세상은 이 드라마의 감독이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걸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봤다고 해서 이 불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죠. 사실 꽤 즐거운 9시간을 보낸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감독은 2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세상이 공유하는 기준과 본인과의 간격을 좀 줄여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