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MAD LIF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E HOLIDAY Dec 31. 2023

물치는 항구다

속초(2) - 19/10/2023

<소노펠리체> 편의점에서 밤에 먹을 술과 간식을 산 후에 물치항으로 향했다


해가 지기 전에 저녁을 먹으로 숙소 밖으로 나왔다. 골프장을 끼고 있는 숙소인 탓에 부지가 넓어 자연스럽게 산책할 수 있는 공간도 넓었다. 구름이 약간 낀 오후의 산맥은 마치 수묵화 같았다. 가까울수록 진하고 멀수록 옅어 보이는 것이 정말 묵으로 농담을 표현한 것처럼 보였다. 약간은 차가울 정도로 시원한 가을 산바람을 맞으며 편의점으로 가 간식거리를 산 우리는 숙소를 뒤로 하고 <물치항회센터>로 향했다. 


좀 치는 항구 물치항구
전목 한 마리는 서비스


물치항회센터


차로 얼마 달리지 않아 <물치항회센터>에 도착했다. 구글맵 리뷰를 보니 물치항은 회로도 유명하지만 '차박 명소'로도 유명한 것 같았다. 여느 회센터처럼 1층에 횟집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손님이 많지는 않아서 텅 비어 있는 가게도 꽤 됐다. 우리 가족은 그중에서 포장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매장 손님은 우리 바로 옆 테이블 한 팀이었는데 벌써 소주, 맥주를 합쳐 네댓 병을 비우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횟감을 살펴보러 밖으로 나왔다. 우리 남매는 물론 부모님들도 가장 무난한 광어를 즐기는 편이어서 회 종류를 고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회 가격만 10만 원 내외였다. 어렸을 때는 가격은 모르고 주는 족족 받아먹기만 했는데, 이십 대가 넘으니 회가 참 비싼 음식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수조-손질 부엌-매장 마루'로 이루어진 단출한 구조 때문인지 스끼다시는 따로 나오지 않았다. 초장, 쌈장, 쌈채소 등이 테이블에 차려져 있었고 십 분이 좀 안 돼서 회가 나왔다. 회맛이야 항구 바로 옆인데 나쁠 게 있겠는가. 내가 맛알못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회는 싱싱하고 맛있었다. 서비스로 나온 전복회도 비린맛 없이 오독오독 씹히는 게 한두 점씩 먹기 좋았다. 


우리 옆 테이블은 벌써 회접시는 비운 지 오래고 라면사리 넣은 매운탕으로 소주를 비우고 있었다. 회를 반쯤 먹은 우리도 매운탕과 공깃밥을 주문했다. 위층에서 매운탕을 들고 내려와 우리 자리 옆 빈 테이블에 내려주고 가셨다. 그 때문에 아빠와 내가 냄비와 버너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매운탕을 옮겨 와야 했다. 매운탕은 너무 짜지 않고 콩나물이 많아서 시원했다. 다만 술안주로 먹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좀 심심할 수 있을 것 같아 충분히 졸인 다음에 사리를 넣어 먹어도 좋을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잠시 밤바다를 구경했다. 회센터 건물 말고는 불이 들어오지 않아 플래시를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했다. 주차장에서 방파제 난간에 붙어 사진을 찍는데 안내판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차박 금지'. 분명 구글맵에 '차박 명소'라는 리뷰가 많았는데.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한창 바닷바람을 쐬다가 차로 돌아가는 중에 주차장 한쪽 구석에서 텐트를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중년 두 명이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차박이 금지인거지 캠핑이 금지는 아니니까' 아마 이런 생각으로 텐트를 친 것 같았다. 10분 이상 서있기도 추운 날씨였는데 불도 못 피우고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침없이 하이킥' 우리 집의 ASMR이자 BGM
배가 부를 것을 대비해 맥주 말고 짐빔을 준비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하나둘씩 목욕을 마치고 TV 앞으로 모였다. 푹신한 침대도 있었지만 모여서 과자와 술을 먹기에는 마루에 깐 이불이 더 적합했다. '하이킥'을 보지 않는 아빠를 제외하고 엄마, 동생, 그리고 내가 모여 1박 2일 여행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나중에 보니 아빠는 오랜만의 장거리 운전 탓인지 먼저 잠에 들어 있었다. 


늘 그렇듯 가족과의 여행은 평범하고 가끔은 답답하기도 하지만 일상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가족의 배경은 항상 익숙한 우리 집이지만 이렇게 가끔씩 밖으로 나와 배경을 바꾸면 일상적인 대화만 하더라도 뭔가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별 다른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를 둘러싼 익숙한 배경을 바꿔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날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정도 점심 먹고 커피를 마신 후 집에 가는 평범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남과 비교하지 않고 평범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면 무엇을 하더라도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날은 내일의 특별함을 기대한 채로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잠에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풍 없는 속초 단풍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