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E HOLIDAY Jan 10. 2024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은 행복이라 부르지 않는다

<괴물> - 고레에다 히로카즈

누군가 가질 수 없는 것은 행복이라 부르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사랑을 포함한 많은 것을 분류하고 규정한다. '미나토'의 어머니 '사오리'는 아들에게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호리' 선생님은 인간 피라미드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미나토'에게 '그러고도 남자냐'며 장난친다. '미나토'의 동급생 친구들은 '요리'를 여자아이 같다며 놀리고 괴롭힌다. '내 피부는 쫀쫀해요~' 같은 여성 코미디언의 대사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는 동급생 남자아이의 모습은 어린아이에게 이미 고정된 인식이 자리 잡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미나토'는 '요리'와 폐선로에서 시간을 보낼 때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는다. 그러나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픔에 잠긴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가 말하는 평범한 행복에 한 발짝도 다가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미나토'는 돌아가신 아버지 앞에서 '난 왜 태어났어?'라고 속삭이며 조용히 절망한다. '요리'는 평범한 남자아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네 뇌는 돼지의 뇌'라는 폭언을 듣고 신체적 학대까지 당한다. 어쩌면 빅 크런치로 세상이 멸망하고 모든 것은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요리'의 말은 자신을 잔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리셋되기를 희망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윽고 마치 진짜 빅 크런치가 온 듯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다.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지만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미나토'와 '요리'는 숨을 헐떡거리듯 웃으며 뛰어간다. 


사랑을 정의할 수 있는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도 사랑이 무엇이라 선뜻 말하기 어렵다. 지금 당장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이 사랑인지 확신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저 그 사람이 좋고 같이 있는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그 대상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연인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어쩌면 고귀한 사랑 앞에서 그 대상을 분류하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하고자 노력해 본다면,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인정하고 아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교장선생님이 '미나토'에게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은 행복이라 부르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시 태어나거나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다. 다만 너무나 거대하고 억압적인 세상의 시선이 이를 방해할 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런 세상을 만든 어른을 '괴물'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실언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