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예찬론에 조심스레 반대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야 더울 때 시원하게, 추울 때 따뜻하게 일하지.
한번쯤 이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모부님이나 가까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해주는 말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계절타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라는 의미다.
나는 그렇게 사무직에 대한 로망을 키워왔다. 사원증 메고 높다란 건물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그런 화이트칼라 인생. 테이크아웃 커피까지 있으면 화룡정점이다.
하지만 막상 경험해본 사무직은 내가 상상해온 것과 달랐다.
오전 9시, 사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탄다. 커피, 담배, 그리고 약간의 술냄새가 섞여 숨이 막힌다. 숫자가 9를 가리키기 전까지 숨을 참기도 한다. 문이 열리고 내려 사무실에 들어간다. 가방을 내려놓고 회의실 문을 연다. 환기가 안돼 텁텁한 공기가 몰려들어온다. 한숨을 내쉬고 컴퓨터를 켠다.
내가 생각하는 사무실은 이익집단의 수용소다. 그 곳에 앉아있는 이들 중 온전히 행복한 이는 아무도 없다. 농담에 힘입어 터져 나온 웃음은 몇 초만 지나도 사라진다. 다들 무표정한 얼굴로 모니터를 쳐다보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하루 중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내 컴퓨터다. 눈은 듀얼 모니터를 빠르게 왔다갔다 하며 정보를 찾아낸다. 5개월 넘게 일하니 눈이 너무 많이 안 좋아져서 웬만한 텍스트는 프린트해서 읽는다. ‘눈이 빠질 것 같다’는 말의 의미를 점점 깨달아간다.
겨울이 되면 필수 구비해야 할 네가지가 있다. 인공눈물, 핸드크림, 립밤, 미스트. 이 중 하나라도 없는 날이면 사무실의 건조한 공기에서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옆 자리 동기에게 빌려달라는 말을 해야 한다.
이따금 울리는 전화벨 소리와 커피머신 소리. 적막한 사무실의 공기가 싫지만 이것들은 소리가 아닌 소음이다. 결국 에어팟을 낄 수밖에 없다.
가장 힘든 건 인간적인 소통의 부재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마감일을 지켜야 해 써내는 기분이다. 정확히 말해 짜내는 느낌이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마를대로 말라버린 수건은 다시 한번 짜내서 마지막 물 한방울을 짜낸다.
간혹 선배님이 인터뷰를 가시면 기를 쓰고 따라갔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건 굉장한 즐거움이다. 비록 인터뷰에 가면 두시간 내내 손에 불나게 타이핑을 해야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다. ‘살아있는’ 사람들과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텍스트에 갇힌 이야기들엔 이골이 났다.
사무실 내에선 누군가 내뿜은 부정적 에너지를 피할 도리가 없다. 나 역시 누군가를 부정적 에너지로 힘들게 했겠지. 서로의 힘듦이 고스란히 전해질 때, 도망갈 공간이 없는 사무실이 한참 미워졌다.
사무실의 장점은 분명 있다.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다. 하지만 사람 아닌 컴퓨터와 일하는 게 인간적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매달 들어오는 돈을 보며 버틸 순 있겠지만 대체 몇 년이나 갈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소비를 하고, 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꾸역꾸역 일을 계속해나가는 걸까. 나는 6개월만에 <사무실 예찬론>에 반대하게 됐다.
6개월 사이 체중이 약 3kg가 늘었다. 근육이면 너무 좋겠지만 보나마나 체지방이겠지.
움직이지 않아 무거워진 몸은 이제 그 체중만큼이나 무거운 숨을 뱉어낸다. 한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