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꿨던' 광화문, 내가 '경험한' 광화문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수 있을까

by pathfinder

취준생에게 광화문과 여의도는 동경의 대상, 그 자체다. 출퇴근길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과 거리마저 동경하게 되는 건 그들이 일하길 바라는 기업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광화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서있는 광화문 광장을 지나면 경복궁이 나온다. 그 너머엔 푸른색 지붕의 청와대가 보인다. 그리고 광장을 둘러싼 신문사들. 외교부, 금융공기업. 밤이 되면 광화문은 ‘빌딩숲’이 되어 서울의 멋을 뽐낸다. 취업을 간절히 원하는 취준생들에게 멋져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광화문을 사랑했다. 상반기에 광화문 근처의 종각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종로타워자체가 날 압도했다. 점심시간엔 사원증을 목에 걸고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직장인들의 쿨한 모습에 감탄했다. 광화문, 이 곳은 뭔데 전문적이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한걸까. 그렇게 제멋대로 광화문을 ‘쿨한 곳’으로 결론내렸다.


나의 기대가 지레짐작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된 건 광화문에서 인턴을 시작하고 나서였다. 일을 시작한지 한달이 채 안 되어 '시위의 성지'인 광화문의 민낯을 마주했다. 언론에서 촛불집회를 볼 때 나는 그게 멋있고 정의로운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 집회의 의도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집회들은 하나 둘 모여 광화문에서 일하는 직장인에겐 끔찍한 소음으로 다가왔다.



10월 25일 있었던 일이다. 오후 세시, 밖에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스피커를 설치한 건지 음악 볼륨도 굉장히 크다. 궁금해서 무얼 하나 내다보니 패션쇼를 하더라. 무대를 설치해놓고 모델이 워킹하고 있었다. 런웨이도 아니고.


더 어처구니 없는 건 한시간 뒤엔 “문재인 퇴진”을 외치는 이들의 집회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공산주의자 타도”를 외치는 몇몇 기독교 세력들의 목소리까지 가세해 광화문은 북새통이 됐다.


1576256015620.jpg 난리도 아니었던 10월 25일의 광화문 광장 / 직접촬영

여기가 직장인건지 시장바닥인건지... 패션쇼와 태극기. 반공 기독교 집회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모습에 기가 차서 웃음만 나왔다. 이게 무슨 끔찍한 혼종인걸까. 홍대도 아니고 패션쇼는 여기서 왜 하는 거며, 여기서 온갖 시위를 하는 이유는 청와대가 가까워서일까, 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물론 답을 주는 이는 없었다.



에어팟을 껴보고, 사무실에 음악도 틀어봤지만 소음은 우리 귀에 그대로 꽂혔다. 외신 번역도 하고 집중해서 글을 써야 하는 내게는 굉장히 큰 방해가 됐다. 광화문의 온갖 소음에 노이로제가 걸릴 무렵, “광화문이 싫다”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광화문을 동경해마지않았던 몇 달 전의 나는 온데간데 없었다.






1576255104577.jpg
1576255105768.jpg
회사 앞 청계광장, 연말 분위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대로 광화문을 싫어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광화문을 마냥 미워하기엔 청계천을 수놓은 조명들과 동아일보 앞 청계천 광장을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는 낭만적이었다. 해가 진 후 빌딩숲이 만들어낸 야경도 좋았다. 퇴근행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저절로 ‘우와’소리가 나오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광화문을 저주했던 내 마음을 다시 붙잡아놓았다.



생각해보면 광화문에서 나는 일만 했다. 상반기때도 근처 종각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하반기 들어선 매일 출근하며 때론 10시까지 야근도 했다.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재학생 시절 외대 근처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고 과제를 했듯 광화문에서도 퇴근 이후의 시간을 누려보면 어떨까.


이런 마음이 든 건 한 달 전이었지만 실행이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세 번은 스터디를 가야했고, 수요일. 금요일엔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었으니까. 동아일보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지하철에 몸을 싣기에 바빴다.



1576254965678.jpg 광화문우체국점 스타벅스에서

이번 주 월요일, 스타벅스 기프트콘도 사용할 겸 퇴근 후 스타벅스에 갔다. 자소서를 쓸 게 있어 집에서부터 노트북을 챙겨왔다. 광화문의 야경을 보며 일하고 싶어 일부로 창가 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기분이 달랐다. 하루종일 초록 시트지가 붙여진 곳에서 햇볕도 못보며 일했기 때문일까. 퇴근 후에 좋아하는 딸기크림푸라포치노를 마시며 창가에 앉아있으니 자소서 쓰기 마저 즐거웠다. 스타벅스 광화문우체국역은 퇴근 시간 조용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있던 사람들은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회사 옆 카페를 퇴근 시간 갈 때의 가장 큰 장점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웠던 점심시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1576255025660.jpg
1576255026892.jpg
광화문D타워 스타벅스 점에서, 구독하고 있는 시사인과 함께


화요일은 회사로 찾아온 ‘시사인’ 잡지를 들고 광화문d타워점 스타벅스를 갔다. 저녁을 먹지 못해 토스트 하나를 같이 주문하고 마찬가지로 창가에 앉았다. d타워점은 2층까지 있어 2층에 올라갔는데 방충망 같은 게 설치되어 있어 야경이 뚜렷히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쉬웠다. 분위기는 좋지만 광화문우체국점보다 사람이 많아 좀 더 소란스럽긴 했다.



이내 자리를 옮기고 시사인과 조선일보 신문을 읽으며 최근 이슈들을 적어내렸다. 이 또한 신선한 기분을 주었다. 광화문에서 공부를 하는 건 또 처음이었다.






1576255590202.jpg 상해여행 당시 찍었던 사진


중국 상해를 여행했을 때 동방명주 근처 금융센터를 갔었다. 생각해보면 야경이 정말 예쁜 그 곳에서도 누군가는 밤을 지새우며 일하고 있을 거였다. 내가 광화문에 환멸을 느꼈던 본질적인 이유는 난 이곳에서 ‘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상해의 화려함을 온전히 누렸던 건 아무런 의무없이 그 곳을 지나간 여행자였기 때문이었겠지.



‘일상을 여행처럼’ 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가 어려웠다. 여전히 난 광화문의 소음이 싫었고, 그야말로 지옥철인 출퇴근길 광화문 5호선도 탐탁치 않았다. 하지만 퇴근 후 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광화문 카페에서 공부하고, 또 글을 쓰는 색다른 경험은 내게 다른 시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 희소식이 있다. 겨울이라 추워서 집회를 잘 안한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