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저도 당신의 애씀이었지
스포를 하지 않고 리뷰를 할 수 있을까?
리뷰를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No"라는 답을 내렸다. 결말 스포일러 없이 리뷰를 잘 쓰시는 분들도 많지만, 내가 추구하는 리뷰는 스포없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오늘 소개할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결말까지 훑지 않고서는 그 깊이를 논할 수 없는 영화라고 느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정현의, 이정현에 의한, 이정현을 위한 영화이다. 부족한 제작비를 배우 이정현님이 사비를 보태가며 제작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실제로 이정현 님은 이 작품을 통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정말,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영화는 한 상담사를 찾아온 수상한 여자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까칠한 상담사를 순식간에 제압해 꽁꽁 묶어놓고 이상한 음식을 먹인다. 이내 "제 얘기 좀 들어보실래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주인공 수남은 'K장녀'를 보는 듯하다. 성실하고, 성실하고 또 성실하다. 고교시절부터 자격증을 수도없이 취득해 상을 받았다. 하지만 컴퓨터의 도입 앞에 그의 주판실력은 무가치해졌고, 결국 컴퓨터를 도입할 돈이 없는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남편 규정을 만났다. 규정 역시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었으나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늘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지 규정의 청력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보청기를 껴도 대화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수남은 2천만 원을 마련해 규정을 수술시켰다. 그렇게 그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행복의 여신은 그들 편이 아니었다. 그들의 성실함은 행복을 사기에 더없이 모자랐다. 규정은 근무 중 갑작스런 귀의 통증을 호소하다 손을 잃었다. 생산직 노동자에게 한 손의 부재는 노동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규정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수남은 투잡, 쓰리잡, 포잡까지 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만의 시간을 완전히 포기하고 '내 집 마련'을 위한 기계가 됐다.
그렇게 '인간소외'를 몸소 경험하며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이렇게 영화가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불행히도 무기력과 우울함에 함몰된 남편은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한다. 수남의 곁에 남은 것은 주택 한 채와 식물인간이 된 남편이었다.
지금까지의 고생은 고생도 아니었던 걸까. 수남의 삶은 더욱 처절해진다. 깨어날 기색이 없는 남편과 그 남루한 생명을 지속시키기 위한 막대한 병원비. 그러던 와중 그에게 '재개발' 이라는 한 줄기 빛이 찾아온다. 수남은 그 동아줄을 반드시 붙잡기로 굳게 결심했다.
"시끄러워지면은, 다 필요없어요. 우리가 안 나서는 이유가 바로 그거라니까. 괜히 반발만 더 일으킬까봐."
"하여튼 너무 무리해서 하지 마세요"
사실 주민들 간의 다툼도 '을들의 싸움'이다. 왜 너희 구역만 재개발시켜주냐. 공정하지 않다, 는 외침을 틀렸다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을들의 싸움이라 해서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리더를 맡은 도철은 자신의 집에 서명을 받으러 찾아온 수남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수남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과 갈갈이 찢긴 서명서를 갖고 쫓겨난다.
수남 역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종이에 불을 붙여 도철의 집 방향으로 던진다.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로 너무나 잘 숙련된 던지기실력 때문에 도철의 집은 불이 난다. 수남이 던진 종이에 붙은 불이 그대로 옮겨 붙은 것이다. 보일러배관이 터지면서 도철은 사망한다.
방화를 기점으로 수남의 삶은 더욱 비극으로 치닫는다. 분노조절장애가 극심해진 형석은 수남을 납치한 후 고문한다. 수남은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아줌마 재개발 발표될 때까지만 여기 있어. 재개발 발표 나면 그 때 풀어줄게."
"안돼요...제 남편 병원에 있단 말이에요..."
아르바이트 실력으로 단련된 던지기 기술이 또 한번 발휘된다. 가지런히 접은 딱지가 형석의 눈에 명중한다. 이내 흉기가 형석의 몸을 관통한다.
죽음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돌아옼 수남은 상담사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복어를 손수 다듬어간다. 식당에서 일하던 실력으로 입맛을 돋구는 양념까지 무친채로. 수남이 상담사를 괜히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앞과 뒤가 연결된다. 상담사는 이내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지금까지 수남이 죽인 인물은 총 세 명. 하지만 여기서 그의 살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명의 경찰관들이 수남을 의심해 찾아와 협박하자, 순식간에 칼로 찌른 것.
"안돼요. 우리 남편 곧 깨어난단 말이에요."
사람을 찔러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질책하는 수남. 이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직접 봐야만 한다.
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해주세요.
난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성실함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살 때, 우리는 처절해진다. 그 처절함이 극도로 몰린 상황을 만날 때, 이는 폭력으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 속 수남이 정확히 그랬다. 도덕적인 선에서 성실히 살아갔을 뿐인데, 재개발이라는 동아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생존을 위해 쌓아온 그의 능력은 살인을 위한 도구가 된다. 그렇게 삶이 되돌아갈 수 없는 지경까지 망가진다.
영화의 결말이 참으로 황망하다. 깨어날 줄 모르는 남편을 스쿠터에 태워, 신혼여행 대신 가자고 했던 바다로 향하는 수남의 뒷모습. 그의 뒷모습에 대고 "참 애썼어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미친 소리같지만, 살인마저 수고했다고 전해주고 싶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평범한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는 사회에서, 정말로 고군분투했던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바다에 도착한 수남은 어디로 갔을까. 민간인 3명, 경찰 2명 총 5명을 살해한 그가 돌아갈 곳이 있을까. 영화는 스쿠터를 타고 바다로 향하는 뒷모습을 비추는데서 끝나지만, 감히 상상해보자면 그는 남편과 함께 물에 뛰어들었을 것 같다. 아니면 남편이 깨어날 거라 굳게 믿으며 다시 돌아왔을까. 어느 쪽이 됐든 비극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관객은 4만 4천명. 개인적으로 더 많은 이들이 영화를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미 스크린에서 내려간지 오래니 2차 관람을 통해서라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오력'을 강조하는 기득권들이 봤으면 한다. 막상 그들은 90분의 시간을 이 영화에 할애하지 않겠지만.
온몸으로 열연한 배우 이정현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반도> <군함도>에서 본 그의 캐릭터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꼭 맞는 옷을 입은 듯했다. 나는 이정현의 수남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왓챠플레이 관람
평점: 8.5/10
한줄 평: 당신 참 애썼다, 살인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