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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finder Jan 12. 2021

영화 <첨밀밀> : 홍콩이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들

'사랑과 우정 사이'란 말보단

꿈을 그려낸 영화를 좋아한다. 꿈을 이룬 순간의 아름다움을 걷어내고, 꿈을 좇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를 좋아한다. 그 과정은 마냥 예쁘지 않다. 영원과 같은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 꿈에 도착할 수 있다. 내게 <첨밀밀>은 꿈에 닿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다가왔다.


홍콩드림 : 목표의, 목표에 의한, 목표를 위한 삶 

86년 3월 1일, 이요와 소군은 홍콩에 도착한다. 각각 광저우와 톈진에서, 나름의 꿈을 안고 왔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한 중국과 달리 홍콩은 오직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톈진엔 맥도날드가 없다"는 소군의 대사에서, 홍콩과 본토의 경제적 차이를 알 수 있다. 이들은 홍콩의 번영을, 그 번영을 내재화할 자신을 탐했다.


꿈과 사랑, 이 두가지 요소가 주축이 되어 <첨밀밀>의 전개를 끌고 간다. <첨밀밀>은 사랑에만 매달린다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다. 본토에서 번영의 도시, 홍콩으로 건너왔던 이들의 목표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이요와 소군이 내린 선택들은 결국 이 목표와 깊이 관련돼있기 때문이다.


이요는 그야말로 목표의, 목표에 의한, 목표를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맥도날드 근무에 영어학원 알바를 겸하며 틈틈이 사업까지 벌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체화한 사업가의 모습을 보인다. 불어나는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 가장 환하게 웃는다. "돈 많은 여자 처음봐요?" 라는 명대사도 이 장면에서 나왔다.


소군은 이요에 비하면 '소소한 목표'를 갖고 있다. 고향에서 만난 약혼녀 소정을 홍콩에 데려와 결혼하는 것이다. 소군에게 소정은 고향과 다르지 않다. 자신을 안정되게 하는 '뿌리' 같은 존재이다. 영화는 막 홍콩에 도착한 소군이 소정에게 편지를 쓰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소정은 소군이 홍콩으로 향한 이유이다.


딜레마는 여기서 출발한다. 이요와 소군은 타지생활을 함께하며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게 된다. 친구라곤 서로밖에 없는 상황인만큼 그들의 관계는 사랑과 우정을 넘나들었으리라. 외국에서 몇개월이라도 살아봤다면 이 감정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요에게 소군은 목표가 아니었다. '홍콩인'이 되길 원했던 소군은 본토인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소군은 그 나름대로 약혼녀와의 결혼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불완전했다. 서로는 영어제목대로 '사랑에 가까운 전우(Comrades)'였다. 의지와 탐닉의 대상이었으나, 목표가 되진 못했다. 타지생활을 감내할 수 있는 '뿌리'가 되진 못했다. 이후 벌어지는 모든 갈등들도 사랑과 목표의 불일치에서 기인한다. 꿈과 사랑이 맞물리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 후반부, 이요와 소군은 뉴욕에서 재회한다. 홍콩이 97년 반환을 앞두고 혼란스러울 시점이었다. 영화는 입을 빌려 당시 홍콩의 상황을 밝힌다. "이젠 홍콩에서 광저우로 일하러 나가. 중국에 더 기회가 많아." 떠오르는 중국, 지는 홍콩- 목표를 좇아 홍콩에 온 이요와 소군은 떠날 수밖에 없었을 테다. 홍콩은 더이상 이들의 꿈이 아니었을테니.

홍콩드림에서 아메리칸드림으로. 영화는 시종일관 꿈을 놓지 않는다.





홍콩인의 정체성: 가지기 위해 가진 척 해야하는 대상


<첨밀밀>은 끊임없이 정체성을 말한다. '홍콩인'이 되고자 발버둥치는 이요를 통해서다.


소군을 처음 만났을 때 이요는 홍콩출신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유창한 광둥어는 그가 내세우는 방패로서 기능한다. 북경보단 홍콩과 훨씬 가까운 광저우의 지리적 특성도 홍콩인처럼 보이는 데 기여했을 테다. 소군의 목표는 '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홍콩에서 홍콩인으로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Fake it till you make it" 이라는 말이 있다. 이룬 척 하면 정말 이뤄지니까, 이룬 척 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는 이 격언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싶다. 'try to make it',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루기 위한 노력이 치열해질수록 내가 미치도록 갖고 싶은 무언가를 아직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셈이다. 결핍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이요도 그랬다. 이요는 '성공을 위해 미친듯이 노력하는 본토인'이 아니라 태생적 홍콩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요는 자신을 철저히 홍콩인으로 정체화했다. 테레사 텡 테이프를 사면 본토인인 것을 들킬까봐 사지 않았던 수많은 본토인 역시 같은 이유 아니었을까. 철저하게 'Fake it' 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꿈을 찾아간다. 그 꿈이 되기 위해 본래의 정체성을 버린다. <블랙스완> 등 꿈을 말하는 영화에서도 이런 식의 서사를 볼 수 있다. 흔한 서사지만 늘 마음에 닿는다. 그 과정이 고단하다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랑의 모양


<첨밀밀>은 불륜에서 자유롭지 않다. 소군은 이상적 목표대로 소정을 데려와 결혼하지만, 그 이후 이요와 서로간의 마음을 확인한다. 이요는 파오와 동거하지만 여전히 소군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다양한 사랑의 모양으로 해석하고 싶다. 소군이 이요에게 마음이 있음에도 소정과 결혼한 것도, 이요가 파오를 따라간 것도 이들을 향한 감정들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군이 금팔찌를 이요와 소정 모두에게 선물한 것도 이러한 관점에선 이해할 수 있었다. 이요의 말대로 "두 여자(심지어 한 명은 약혼녀)에게 같은 선물을 한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소군의 마음에서 양갈래로 뻗어나간 감정은 둘 모두를 필요로 했던 것 아닐까.


소군에게 소정은 목표였다. 이요에게 파오는 목표이자 안정감이었다. 재정적으로 힘들어 하루종일 안마사로 일해야 했을 때, 고객을 안마하느라 손가락이 아플 지경이었을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었다. 거대한 문신 사이에 미키마우스를 새겨 자신을 웃게 해 준 사람이었다. 파오는 살을 부대끼며 함께 산 정()이었다.


그래서 이요는 파오를 따라갔다. 파오를 향한 감정과, 소군을 향한 감정은 너무나 달랐다. 설령 그 두 감정 모두 사랑이라할지라도 사랑의 '모양' 만큼은 달랐을테다. <첨밀밀>은 서로 얽혀 혼란을 자아내는 사랑의 모양들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흔히 말하는 '이상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에선 영화가 무엇을 말해야하는지 되묻게 됐다. 영화는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삶의 모양을 그려내야하는 걸까. 자신있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영화는 인간의 본성, 욕망을 충실히 그려내야 한다. 어떤 담론이든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낼 때 시작될 수 있다. 영화가 이상향과 사상만을 좇는다면 그 어느 누구의 공감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영화는 현실세계의 오물까지도 정직히 비춰내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첨밀밀은 다양한 인물의 사랑을 그려낸다. 제레미와 양배추의 사랑, 고모와 윌리엄의 사랑, 이요를 향한 파오의 감정이 그렇다. "이 멍청한 여자야 여길 왜 왔어. 얼른 다른 남자 찾아가"라는 대사가 이토록 가슴 아플 줄이야. 영화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런 넉넉함 속에서 인물들은 영화라는 캔버스를 꽉 채워간다.




<첨밀밀>이 <위대한 개츠비>와 꽤 비슷하다고 느꼈다. 두 영화 모두에서 주인공은 꿈을 위해 매진한다. 설령 그 꿈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존재라도, 그 꿈을 통해 삶을 지탱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현실이 사랑의 발목을 잡기도, 사랑이 현실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런 불협화음의 '과정'이 닮아있었다.

하지만 결말만큼은 전혀 달랐다. <첨밀밀>은 결국 인연의 중요성을 말하며, 소군과 이요의 미래를 열어둔다. 관객의 상상 속에서 둘은 행복한 엔딩을 맞는다. 반면 개츠비의 마지막은 파국이었다. 63빌딩 꼭대기에서 지하로 추락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절대 잊지 못할 장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삶을 함께 사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청년이 된 기분이었다. 그들의 꿈과 사랑을 공유했으며, 함께 웃고 울었다. '영화적 경험'을 이 정도로 공감했다는 건 대단한 경험이다.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이듯, 나에게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영화로 자했다.


*

"내가 더 멍청하죠. 당신에게 이용당했잖아요."

"왜 알고도 가만히 있었어요?"

"안 그랬으면 친구가 되지 못했을테니까, 여기 유일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나도 여기에 친구 없어요."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하기 시작했던 순간.



01. 08 왓챠에서 감상

한줄 평: 홍콩이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들

평점: 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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