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여를 심어주는 '메신저'로 살아간다는 건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브런치로 '피신'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내가 피신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메신저'로 살고 있다. 감사하면서도 버거운 삶이다. 끊임없이 성장해서, 좋은 모습과 인사이트를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괴롭힌다. 자연히 내면의 우울은 이야기하기 어렵다.
인정하고 싶지만, 나는 여전히 아프다. 고통의 정도가 달라질 뿐, 온전히 행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우울이 늘 나를 따라다닌다. 어쩌면 그 우울을 퇴치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 그 결과에서 오는 성취감은 늘 짜릿하니까. 고통에 마취제를 놓아주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동경한다. 나도 그 이유를 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회사없이 돈을 버는 젊은 여성. 많은 이들이 꿈꾸는 라이프스타일 중 일부가 내 모습 아닐까.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엔 빛과 어둠이 있다. 나같은 라이프스타일에도 명암이 분명하다.
가치를 제공하면 돈이 따라온다고 배웠다. 실제로 그랬다. 문제는 타인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종종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삶은 차츰 흐릿해진다. 백만 명이라면 백만 가지의 생각이 있을텐데, 그들의 생각에 나를 끼워맞춰야 한다고 느낄 때가 많아진다. 좋은 글보단 안전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본연의 모습을 토대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는 남아있다. 꼭 열심히 살지 않더라도, 타인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지 않더라도 사랑받고 싶은 내 마음은 욕심일까.
날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사실 나의 일부만 좋아하는 것과 다름없다. 슬프게도 나의 옛 연인도 그러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삶의 모범이 되는 내 모습을 필요로 했다. 그 사실이 아직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상처로 남아있는 듯하다.
메신저로 살아가는 삶이 힘겹다고 느낀다.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상담치료 5회를 등록했고, 앞으로 그만큼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 한다. 메신저로 살아가는 게 힘들어서 상담을 받기로 했는데, 그 비용 이상으로 벌기 위해 계속 메신저로 살아야 한다. 얼마나 모순인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
하지만 난, 대부분의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무서운 건, 그들에게 맞춰야 내가 롱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해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