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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노 치는 변호사 Aug 12. 2015

점점 더 많이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한 사람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사법연수원에 처음 들어가니 연수원자치회에서 단체로 신용카드 발급을 진행해 주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몸빼바지 입고 공부만 하고 있던 나를 '신용'해서 이런 카드도 주다니, 고맙기도 하여라.


신기해하며 만지작 거리다 한번 사용해 보겠다면서 덜컥 현금서비스 기계에 카드를 집어넣었다 뺐다.이게 현금서비스를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길로 곧장 카드사를 방문하여 기계에서 나온 돈에다 주머니 속 잔돈을 얹어 상환했다. 



그 어리버리 신용카드로 구매한 1호 물품은 언니에게 선물한 아이섀도우. 

내 수험기간 내 단 한 달도 빠지지 않고 용돈을 공급해 주던 형부와 언니에 대한 보답치고는 우스운 거였다. 그 어떤 엔젤투자자도 이 초라한 비즈니스 모델을 놓고 이렇게 선의의 투자를 하지는 못했을 거다.


몇 달이 더 지나 연수원 월급으로 무척 팍팍했지만 첫 무이자할부 구매에 도전한 게 있었으니, 부모님께 사 드린 비데였다.  

부모님은 이사하실 때마다 큰 짐 푸는 것은 뒷전이고 화장실에 비데부터 설치하셨다.  비데 설치가 무에 급하셨겠는가마는, 지영이가 어떤 돈으로 사 준 건데 싶어 뼈가 저려 먼저 손이 가셨던 게다.


자식한테 섭섭한게 많은 부모, 부모한테서 콩고물 떨어지길 바라는 자식, 주위에서 많이 본다.

존재만으로 감사한게 부모이고 가족임에도, 다른 기준을 대어(놀랍게도 그 기준이 돈이더라,) 가족의 가치를 잣대질하는 경우...불행히도 사건기록 속에서 늘 만나고 산다. 

솔직히, 파탄난 부모자식 관계, 형제자매 관계가 지천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받은 사랑-. 엄청나게 커다란 상자에 담겨있던 선물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상자가 하도 커서 상자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 그 속을 들여다 보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앞으로 그 안에서 얼마나 더 많은 선물들이 나올런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자, 늑대에게 잡혀 먹히지 않도록 따뜻한 품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위탁된 이 곳,  부모님. 가족.

그 분들로부터 흘러나온 사랑으로 나는 어딘가에 또 사랑을 흘려 보내야 맞다.

숨이 막혀 더 걷지 못하고 잠시 뒤돌아 볼 때마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저 커다란 선물상자를 쳐다 보자니, 그래야 할 것 같다. 


내 가슴 한 복판에 늘 비처럼 쏟아붓는 이 마음을 담아 전한다.

'점점 더 많이 사랑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진리 하나.
부모가 우리 이름으로 한 희생이 아닌 한,
우리는 부모의 희생을 잊는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다른 이름이 없었다.
오직 내 이름뿐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포기한 고향의 이름을 따서 내 이름을 지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전부를 바쳤다.
거기 비하면,
나는 부족한 아들이었다.

남 레,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 중



브런치 작가로 승인된 직후에는 매일 글을 쏟아낼 듯 의기양양 하더니(쯧쯧...)

이제야 글을 올린다, 그것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수정해서. 


촌스럽게, 

하지만 나라서 쓸 수 있는 글로, 

오늘 가장 하고 싶은 말로,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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