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푸념
글쓰기를 쉰 지 벌써 반년이 되었습니다. 쓰기를 멈춘 건 '무엇을 써야 하는가'하는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소재고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방향성의 문제로 느껴졌거든요. 브런치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작년 2월, 처음으로 경험기획이라는 주제를 잡았던 때입니다. 한동안 생각나는 대로 마구잡이로 글을 썼었지요. 그동안 묵혀둔 소재가 많았던 덕인지, 다행히 몇 달은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단기간만에 나름 성과도 보았습니다. 출간제안을 받아 책도 내보고, 강의도 해보고, 필진으로 기고도 해봤어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기고하는 글은 왠지 '아는 척'하며 억지로 뱉어내는 느낌이었고, 브런치에 올릴만한 소재도 마땅치 않았지요. 이때부터는 쓰고 싶었던 글이 아니라 발행을 위한 글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글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도는 뚝뚝 떨어져 갔지요. 이 상태로 글을 쌓기만 하는 것은 무의미를 넘어, 제게 손해가 될 것 같아서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방향성을 점검하면서요.
왜 써지지 않을까, 깊게 고민해봤습니다. 스스로 내린 결론은 장기적인 방향성의 부재, 즉 브랜딩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대 유행하는 퍼스널 브랜딩이요. 책도 읽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나름대로 공부해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브랜딩의 문제가 맞았습니다. 강의를 하고 돌아오던 날, '방금 내가 한 강의가 정말 수강생 분들께 도움이 되긴 했을까?' 하는 의심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고요. 브랜딩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정말 가치 있는 무언갈 전달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었던 거죠. 스스로조차요. 대상이 명확지 않았거든요. 메시지도 마찬가지고요.
살면서 처음으로 개인 컨설팅이라는 걸 받아보기도 했습니다. 블로그 댓글로 신청하는 방식이었는데, 남겼던 문의글이 무려 4천 자였습니다. 덕분에 블로그 댓글 글자수 제한이 3 천자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D... 그만큼 고민이 많았거든요. 매번 엄청난 분량의 고민을 들어주시는 촉촉한 마케터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하하. 고민은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글에 담지 못했던 '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해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쓰면서 즐겁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잖아요.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쉽게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제가 글 쓰면서 느꼈던 즐거움은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 글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순간에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글의 대가'를 받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돈을 받고 글을 쓰니 마음 편히 생각을 내뱉기가 어려워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게 읽는 사람에게도 더 의미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성과를 이루거나, 소위 '월 천만 원' 버는 기획자도 아니니까요. "기획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하고 말하는 상황이 스스로도 웃기고 거북했습니다. 읽는 분들에게는 더 그랬겠지요.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삽니다."하는 내용이라면 조금은 들어볼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전공과 이력이 조금 특이하거든요. :)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제 이야기 밖에 없기도 합니다. 일반론이나 방법론을 말하기엔 저도 주니어일 뿐이니까요. <요즘 IT>에서 마련해 준 작가모임 자리에서, 글을 쓰는 직장인 작가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우연히 같은 회사에 계신 분도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대부분 저마다의 전문성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무언가의 전문가라는 호칭이 부담스럽더라고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다만, 심리학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즐겁게 조잘거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담을 좀 내려놓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잘하기 위해, 앞으로는 에세이스러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한동안 무언가 가르치겠다는 스텐스의 아티클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서,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에 잠깐, 메일레터를 시도해 볼까 했었습니다. 브런치 글이 종종 서핏과 같은 외부에 공유되는데, 그럼 순간적으로 유입이 확 늘거든요. 어느 순간, 브런치 아이디가 없는 분들이 그렇게 흘러들어왔다가 그대로 흘러나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브런치 아이디가 없어도 글을 받아 볼 수 있게, 그리고 브런치 구독보다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보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알아보고 세팅해 보고, 시작한 지 며칠 안되었는데요. 아무래도 당분간은 접어두게 될 것 같습니다. 공수가 늘어나는 것은 둘째 치고, 자유도가 떨어진다고 느꼈거든요. 메일로 발송한 글은 삭제하거나 수정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처럼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시점에서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에세이의 방향성이라면, 외부에 공유되는 빈도도 줄어들 것 같고요. 신청해 주신 분들이 한 자릿수라, 사실 저는 괜찮습니다만.. 어떻게 감사와 사죄를 드려야 할지 조금 고민은 됩니다. 2주 만의 빠른 포기거든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엇이라도 꼭 챙겨드리고 싶어요.
글을 쓰다 보니 든 생각인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글을 다루는 회사입니다. 돌이켜보면 해왔던 모든 일들에서 글쓰기를 빼놓을 수는 없었던 것 같네요. 지금은 UX라이팅이라는, 사용자 경험 관점의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요즘 UX분야에서는 나름 핫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사 이름으로 강의를 나가면 카피라이팅과 비교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카피라이팅이 소비자 후킹과 감정적 터치를 위한 글쓰기라면 UX라이팅은 사용성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물론 사용성에 감성적 터치가 포함될 때도 있으니, 어느 정도 겹치는 영역도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최근에는 감성적 터치나 메시지 영역은 CX라이팅으로 분류하는 추세도 있습니다.
UX는 사실 따로 공부해 보거나 전공한 적은 전혀 없는데요. 단지 심리학 원툴로 무작정 부딪히고 있습니다. 초기엔 범죄심리와 UX의 접점을 찾아가는 게 일이었지요. 그 때문에 따로 면접과제를 받기도 했었고요. 지금은 꽤나 즐기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만의 방법으로 전공을 써먹고 있는 것 같아서요.
퇴근길 버스에서 묘하게 킹받는 광고배너를 발견해서 저장해 두었습니다. 무려 오늘 찍은 따끈따끈한 사진입니다. 제작물을 만들어본 기획자라면 참을 수 없는 공백이지요.. 이미지 비율로 보아, PPT로 만들어 놓고 그대로 인쇄업체에 던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래도 그렇지 저 만들다만 듯한 배너를 그대로 써버리다니...
카피라도 한 줄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왔습니다. 안 그래도 이 글을 어떻게 써보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런 카피가 떠올랐습니다.
마약수사, 책임지고 끝까지 파헤치겠습니다.
-서울경찰청
조금 더 든든하지 않았을까요. 경각심을 주기도 하면서요. 물론, 책임진다는 말은 공기관에서 쉽게 쓰기 힘든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UX라이팅 측면에서는 아예 쓸 수 없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중의적 표현으로 혼선을 초래하니까요. 쓰고 보니 비슷한 카피를 본 적이 있었네요. 역시 카피라이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에세이라도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또 며칠 못 가 다른 시도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요. 고민만 하다가 지나버린 반년이 아쉬운 마음에, 시도부터 해보기로 했거든요. 메일레터도 막상 발송을 해보니 처음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를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해보기 전엔 모르겠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