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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딧쓴 Sep 03. 2023

작은 브랜드만 할 수 있는 UX라이팅

혹시 지금 텍스트 검수만 하고 있나요?

"당신만을 위한 맞춤형 콘텐츠!"


요즘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알고리즘이 워낙 정교하다 보니, 유행과 구분할 수 없게 되었거든요. 요즘 들어 유독 어떤 영상이, 어떤 상품이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이게 유행이라서 그런 것인지 내가 구경했던 것들과 관련 있어서 나한테만 많이 뜨는 것인지 구분이 안되더라고요.


그중 하나가 UX라이팅입니다. 책도 많이 나오는 것 같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책이 벌써 2쇄를 찍는다는 것을 보면 보려는 사람도 많은 것 같거든요. 제 피드에 UX라이팅 관련 콘텐츠도 종종 보이곤 하는데, '요즘 업계에서 핫하다'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조금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제가 속한 분야를 '핫하다'라고 말하는 게.. 조금 낯 뜨겁기도 하고요.


그래도 관심이 몰리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함께 일하는 클라이언트들이 대부분 1 금융권 등 대기업인데요. UX라이터 채용에 대한 조언을 종종 여쭤보시거든요. 실제로 UX라이터 채용이 심심찮게 보이기도 하고요.


다만, 아직은 UX라이팅이 대기업만의 영역이라는 느낌도 있습니다. 소중한 TO하나를 UX라이터한테 줄 만큼 라이팅을 별도의 영역으로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서비스에 UX라이팅을 적용해보고 싶어도, 외주를 주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요.


혹은 필요성은 느껴도 내부에서 어떻게 알아서 하고 있을 확률도 높아 보입니다. 지금 집필하고 있는 원고의 한 꼭지이기도 한데, 글쓰기는 사실 아무나 할 수 있잖아요. 한국어를 쓸 줄 모르는 직원은 없으니까요. 이미 한국어를 쓸 수 있는 UX디자이너, UX기획자가 있는데, 굳이 UX라이터를 따로 찾는다?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아무튼, 이러저러 이유들로 회사에서는 대기업, 최소 중견기업 이상이 주로 고객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작은 브랜드라면,


하지만 작은 브랜드라고 해서 UX라이팅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실제로 가끔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고요. 비용과 기간 등이 협의되지 않아 무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작은 브랜드의 UX라이팅 프로젝트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작은 브랜드만 가능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 얘기를 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할 수 없는 UX라이팅을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프로세스를 건드릴 수 없다

저는 UX라이터는 아닙니다. 회사에서는 기획자로 일하고 있지요.
따라서 앞으로 말씀드리는 내용은 기획자의 관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들어주세요.


UX라이팅으로 강연을 나가면, 항상 인사말에 포함하는 내용입니다. 저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제가 느끼기에 라이터의 관점과 기획자의 관점이 다르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지요.(제가 제일 내세우고 싶은 정체성은 '경험 기획자'입니다.)


컨설팅 단계에서 저와 저희 팀은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개선점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실제로 라이팅에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프로세스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지요.


여기 [로그인하시겠습니까?] 팝업 버튼이요, 굳이 필요한가요? 그냥 바로 로그인 창으로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요?

고객사: 아.. 그러려면 개발팀이랑 얘기해서 아예 구조를 새로 짜야해서.. 그냥 텍스트 단에서 개선할 부분은 없을까요?

그럼 [로그인하시겠습니까?] 대신 [로그인하고 할인받기]를, [확인], [취소] 대신 [로그인하기], [나중에]로 수정하고, 아래쪽에 [아이디가 없으신가요?] 버튼 추가해서 회원가입까지 유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고객사: 그렇게 가시죠! 회원가입 버튼은 새로 넣을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볼게요.. ㅎㅎ


그럼 실제로 변경되는 것은 텍스트뿐입니다. UX라이팅 프로젝트에서 건드릴 수 있는 것은 텍스트뿐이기 때문이지요. 메뉴구조의 위계가 잘못되었다거나, 불필요한 팝업이 뜬다거나, 서비스 내에서 노출하지 않는 시스템 알람(브라우저 알람)들은 건드리기 힘듭니다. 다른 팀과의 협업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명의 결재를 받아야 하고, 여러 반대의견들을 격파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라이터분들에게 저런 요구사항이 넘어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아쉽게도요.



2. 개성을 담기 어렵다.

톤 오브 보이스, 텍스트 톤 앤 매너, 페르소나 등등으로 불리는 브랜드 개성의 영역입니다. 가장 많은 분들이 알만한 사례는 '토스'일 테고요. 어느 새부터 대부분의 금융사가 "~해요"라는 말투를 쓰고 있지요. 이제는 솔직히 지겨운 "토스처럼"의 여파입니다.


여기에 대해 반대 의견이신 UX라이터 분들도 종종 보이는 것 같아요. '해요'체 쓴다고 UX라이팅이 아니고, UX라이팅이 무조건 친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지요. 저도 동의합니다. 저는 '제2의 OOO'라는 타이틀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에 올라 전 국민이 국뽕에 차오르던 시절, 기사에는 '제2의 싸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타자는 BTS였죠. 모두가 제2의 싸이를 지향했다면 BTS는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은 제2의 BTS, 넥스트 BTS라는 단어가 종종 보이더라고요. 왜 2등이 되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원 앤 온리인 것 같은데 말이죠.


잠깐 옆길로 샌 것 같은데, 요즘 고객사들은 브랜드 톤오브보이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텍스트를 통해 어떻게 우리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낼 것인가 하는 관점이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개성이 강한 보이스는 잡기가 어려워요.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이지요. 시도할 수 있는 것은 '격식을 차리는 정중함'에서 '친근하고 유쾌함'정도의 변화입니다. 1 금융권 은행이 갑자기 당근마켓처럼 "이체가 완료되었습니당!"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에게 50,000원을 보냈어요."정도에서 만족하는 것이죠.


협업툴 슬랙의 앱스토어 업데이트 안내 문구를 본 적 있으신가요? 보통 업데이트 안내는 이런 식입니다.

- 버그 개선 v3.5.19

- 보안 강화

- '응원하기' 기능 추가


하지만 슬랙은 종종 위트 있는 문구를 쓰지요. 이런 식입니다.

- 보안을 강화했지만 실제 사용할 때는 느끼기 어려울 거예요. 열심히 일하는데 티가 안 나는군요.

- '보내기 취소'기능이 추가되었어요. 물론 직장 동료에게 욕을 하고 지우라는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실제 예시는 아니고 기억에 남은 표현으로 흉내 낸 것입니다. 슬랙의 업데이트 문구는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개성이 뚜렷합니다. 이런 시도는 대기업에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허락받아야 할 사람이 많거든요. 한 명만 '에반데..'라고 하면 무산되고요.


세 명까지 가면 솔직히 다행이지요



텍스트 검수만 하지 마세요


제가 가장 크게 느낀 두 가지만 이야기해 봤습니다. 대기업에서는 할 수 없는 UX라이팅, 바꿔 말하면 작은 브랜드에서만 가능한 UX라이팅이기도 하지요. UX라이팅을 하고 싶다면, 텍스트 검수만 해서는 안됩니다. 텍스트 검수가 UX라이터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지만, 저는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해석도 필요하다고 봐요.


물론, 작은 회사라고 해서 위의 일들이 무조건 쉽지는 않겠지만요. 하지만 적어도 대기업보다는 성사될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절차가 덜 복잡하니까요. 좀 더 도발적인 시도도 가능하고요. 하지만 문제는.. 작은 브랜드에는 UX라이터가 없다는 점이겠지요.


사실 UX라이터라는 직무 자체도 이제 막 생겨나고 있는 시점이라서요. 개인적으로는 UX디자이너와 UX기획자가 다른 것처럼, UX라이팅도 라이터와 기획자를 별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계와 시공의 전문가가 다른 것처럼요. 당연히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한 협업은 필수겠지요.


텍스트 검수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텍스트 중심으로 경험을 분석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위에서 로그인 팝업창 예시를 들었는데요, 텍스트 관점에서만 보면 로그인을 유도하는 것에 그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경험(UX든 CX든)을 위해서라면, 팝업창 자체에 로그인 기능을 넣을 수도 있고요, 로그인 없이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이 프로세스 자체가 필요 없다'를 주장하다 보면 사실 UX기획자와 관점이 겹치기도 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디자이너, 개발자, 기획자와의 협업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버튼의 크기에 따라 들어갈 텍스트가 달라질 수 있고, 새로 버튼을 추가해야 할 수도, 프로세스 자체를 점검해야 할 수도 있거든요. 물론 UX라이팅의 관점에서는 텍스트로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서 제시할 수 있어야겠지요. 그것은 대안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하게 사용되는 UX라이팅 원칙 중 '일관성'도 있는데요. 텍스트 검수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동일한 대상은 동일한 표현으로 쓴다'가 되겠지만, 사실 일관성은 톤과 보이스의 영역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토스에서 갑자기 "고객님, 조회 요청하신 대출 적격 확정 통지일까지 거래대금 정산이 필요합니다."라는 문장을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어색하지 않습니까?


이 글에 처음 등장한 "-까?"처럼요.




이러시면 안됩니다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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