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설게하기 Oct 19. 2020

평균의 삶

코로나 백수의 하소연 에세이 

지금은 목포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KTX 안. 어제 목포에서 살 방 한 칸을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방 한 칸 계약했을 뿐인데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의 결정이 너무나 수월해졌다. 한 달 안에 서울의 작업실과 자취방을 정리할 것. 거기에 있는 물건들도 다 가져올 순 없으니까 중고마켓에 빨리 팔아버릴 것. 그동안 할까 말까 망설이며 답장하지 못했던 외주 작업 메일에 당분간 일을 받을 수 없다고 답장을 보낼 것. 서울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을 세어보니 마음이 다시 연약해지며 또다시 돌고 도는 고민에 멈춰 선다.


 

 지금 젊은 시간을 목포에서 보내도 되는 걸까. 그러니까 내 또래 친구들이 가정을 꾸리기 위해 혹은 더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한곳에 정착해 꾸준하게 돈을 벌고 있는 시기에 돈 벌 궁리 없이 목포에 내려가도 되는 걸까. 서울에서 어떻게 인내하고 버텨낸 커리어인데 이렇게 무작정 목포에 가게 되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나의 가능성을 다 상실하는 게 아닐까. 이 결정이 단순한 현실 도피면 안될 텐데...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두통이 찾아온다. 여전히 결정을 내리고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건  결국 '평균의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대체 '평균의 삶'이란 무엇일까?


 

그건 아마 다수가 결정한 어떠한 삶의 모양. 돈이라면 응당 이런 방식으로 벌어야 한다는 것.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라면 응당 기회가 많은 서울에 살아야 한다는 것. 가족이라면 응당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한 집에서 사는 모양이어야 한다는 것. 삼십대에 가져야 할 직업이라면 응당 성장 가능성보다는 안정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 책임감 있는 어른이란 응당 이런 모습이라는 것. 

다수가 결정한 삶의 모양을 자꾸만 기웃거리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아,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구나

아, 나는 목포에서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가는 거구나 

깨닫는다. 


언제부턴가 영상에서 하는 말과 내가 사는 삶이 달라졌다. 체코에서 촬영한 '낯설게 하기'를 통해 그리고 목포의 청년 공동체 '괜찮아마을'을 통해 늘 내가 주장했던 것은 삶의 다양한 선택지였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성공적인 삶의 공식에서 벗어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선택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수의 사람들이 반복되는 출근길에 오르느라 그 반경 밖에 존재하는 무수한 삶의 모양과 가능성을 미처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방식만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평균의 삶' 밖에 존재하는 것들을 영상으로 담아 전달하는 메신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가장 끔찍한 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마치 하나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 모습에 맞춰 같은 얼굴이 되려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얼굴을 욕망하지 않으려면, 내게 주어진 얼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얼굴이 밉게 느껴지지 않고, 거슬리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발걸음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어느덧 내 얼굴이 마음에 들 거라 말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누군가를 위해 영상에서 끊임없이 했던 말들은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그 누구보다 평균에서 멀어지는 것을 무서워했던 나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발걸음을 떼기 두려워했던 나였기 때문에. 제발 용기를 내라고. 



더 비겁한 인생은, 자신이 뭔가를 원하는 지도 모른 채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몇 시간 전, 목포의 월세방을 소개받고 그곳에 들어가 커다란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과 초록색 나뭇잎을 보고 있으니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삶이 먼저일까, 좋은 영상이 먼저일까.



틀림없이 전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앞으로 나는 영상에서 뱉어낸 말들의 자격을 가질 수 있을까.  

6개월 뒤 나는 진짜로 내 얼굴을 마음에 들어 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