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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설게하기 Oct 20. 2020

도피, 현실

코로나 백수의 하소연 에세이

막상 결정하고 왜 목포였을까? 생각해보니 이번에도 역시 현실 도피를 선택했다는 것에 생각이 다다른다. 나는 늘 인생의 변곡점이 다가올 때마다 현실을 택하기 보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를 다 갈아엎어버리는 걸 선택했다. 인생이 가장 엉망친창이라고 느껴졌던 대학시절 휴학을 결정하고 일주일 만에 필리핀으로 날아간 일, 그것만으론 직성이 풀리지 않아 바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일, 그 이후 잠잠하나 싶었는데 직장 생활 3년 차에 무작정 퇴사를 하고 체코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일. 떠나버려야겠다 결정이 마음속에 내려지면 가족들에게 불쑥 통보를 하고 캐리어 하나에 4계절 옷을 챙겨 적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첫날, 낯선 나라에 도착하면 가장 북적이는 도시의 번화가를 걸어본다. 그 거리에 동양 여자애가 나뿐일 때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지구상에 가장 유일한 존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만끽한다. 그건 저녁 7시 홍대입구역 9번 출구 계단을 올라갈 때 수많은 인파 속에 휩쓸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향할 때 느끼는 심리적 공황과는 정 반대의 감정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느끼는 해방감의 유통기한이 끝나면 곧 다른 모양의 외로움이 찾아온다. 간사한 인간은 모두와 같으면 같다는 이유만으로 다르고 싶고, 모두와 다르면 다르다는 이유로 같고 싶기 때문이다. 모국어로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싶다는 충동, 다시 익숙한 집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쉬고 싶다는 충동, 입맛에 맞는 밥을 먹고 싶다는 충동, 나와 취향과 코드가 맞는 오래된 친구들과 연결되고 싶다는 충동, 편하게 영상 편집이나 하며 돈 벌고 싶은 충동.


 

그토록 염원해 왔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라는 바램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면, 그 감정은 유쾌하기보다 오히려 두렵고 걱정스럽고 초라하고 비참한 기분에 가깝다. 이미 멀리 떠나와 버렸다는 건 그동안 불만족스러웠지만 가장 익숙한 것으로 돌아려는 모든 충동을 차단시켜버리고 어쩔 수 없이 인생을 다시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을 뜻한다.


 새롭게 재구성한 인생 속에서 내가 했던 일들은 너무나 하찮을 것들에 불과했다. 나는 세계 일주를 꿈꾸는 낭만적인 여행가 타입도 아니어서 한 도시에만 주구장창 머물며 먹고, 자고 몇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나머지 시간엔 닭장 같은 쉐어아우스 2층 침대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너무 한심한가? 싶은 생각이 들면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와 공원을 산책하거나 커피숍에 앉아 멍 때리며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을 굳이 해외에 나와서까지 하며 시간과 돈을 허비했다. 

하지만 나는 그제서야 관성에서 벗어난 투명한 공간 속에 진입한 느낌이 들었다. 어떠한 책임도 수식어도 속도에도 영향받지 않은 채 오로지 내 인생만을 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그 투명한 공간에.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커피숍에 얼굴의 괴고 앉아, 어슬렁 어슬렁 공원을 걸으며 과거 어떤 일들이 나에게 힘들었고, 행복했고, 불필요 했고 필요했는지 머릿속으로 골라내 보곤 했다. 

어쩌면 나는 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살이를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도피를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었던 상담가 M양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주었다. 

 


“송미야,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일했어.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쓰러진 이후, 매일 엄마를 간호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거야.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 나는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거지? 결론은 하루라도 엄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거였어. 아이러니 한 건 요즘만큼 엄마와 매일 붙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거야.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능동적인 그 시간을 가지러 목포에 가는 거야”

 


독일의 명상가 니콜레 슈테른은 지금 당장 멈춰서 자신을 정확하게 돌아보는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잠시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짬을 내어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살펴보지 않는다면 파도에 휩쓸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현 상태를 점검해보면 놀랍게도 우리가 지금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 이 시점에 적절하지 않은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꺠닫게 될지 모른다. 이는 마치 집을 짓고자 건축업자를 채용해서 건물을 한창 올리고 있는데, 엉뚱한 땅에 집을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것과 같다. 

혼자 쉬고 싶다 - 니콜레 슈테른 




돈을 벌어 내가 지키고 싶은 일들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순간에 더 많이 웃게 되는가?

내가 영상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환경과 사람들이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만큼의 돈이 필요할 수도 의외로 그 정도 까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현재를 과정에 바쳐야 할 수도 의외로 당장 이뤄낼 수도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 내 결핍과 한계를 극복해야 할 수도 의외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어도 괜찮을 수 있다. 

 


m양이 말해줬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능동적인 시간 안에서 그 시시비비를 가려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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