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설게하기 Jan 29. 2021

달밤의 라이딩

코로나 하소연 에세이 

저녁 9시. 마스크를 끼고 친구와 함께 자전거 라이딩을 했다. 이제 가을이 오려나보다. 제법 쌀쌀하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해안선을 따라 시원한 바람을 맞는 기분. 마음과 몸의 속도가 드물게 일치할 때 내가 더 나 다워지는 느낌. 


목포대교 앞 바닷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바닥에 털썩 앉았다. 

친구 EH가 말을 걸어왔다.



EH :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EH는 삶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좀처럼 타인들이 물어봐 주지 않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나 : 어떤 사람은 모르겠는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대충 알 것 같아. 너는 어때


EH : 얼마 전에 회사 동료 J가 나한테 그러는 거야. “만약 지금 다니는 회사가 없어지면, 네 인생에 안정은 없어지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아... 이렇게 넋 놓고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나는 더 많은 곳을 떠나보고 싶어.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고, 

거기서 내가 찍을 수 있는 사진들을 찍으면서 그걸로 돈도 벌고 여행도 하면 좋을 것 같아. 그러려면 지금 나만의 뭔갈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나 : 나는 좋아하는 일이랑 돈을 연결 지을 때마다 항상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 

좋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직업이 되려면 돈도 벌어야 하니까 돈이 되게 하려면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들의 관심을 구걸해야만 하는 상황이 돌고 돌았던 것 같아.



EH :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나 이목을 끄는 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그러면 당장 돈 생각하지 말고 일단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하나씩 해봐야 하나?



나 : 나는 네가 찍은 사진이 좋아. 니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분위기가 좋아. 네가 나를 찍어주는 그 모습이 좋아서 그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EH : 동네 어르신들 영정 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



나 : 너무 좋다. 근처 초등학교 아이들 사진도 잘 찍을 것 같아



하고 싶은 일을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음이 들었다. 



나 : 얼마 전에 내 20대를 돌아보니까 다른 사람보다 가치있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아온 것 같더라. 그건 돈이나 명예를 획득하거나 주목받는 사람이 되어야만 행복해질 것 같은 믿음이잖아. 어쩌면 영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너무 많은 오늘을 희생하는 것 같아. 



EH : 생각해보니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도 별거 아닌 것 같아. 그냥 이렇게 날씨 좋은 날 산책한다던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먹을 때나 그럴 때 쉽게 행복해져



나 :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주변을 사랑할 수 있어서 궁극적으로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삶인 것 같아.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 심지어 영상을 만들지 않는다 해도 말이야.   



나는 몇 개월째 백수인 주제에 행복하다. 큰 성취를 이뤘을 때보다 나를 잘 아는 친구와 자전거를 타는 이 순간이 훨씬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라는 질문을 던질 줄 사람과 함께여서, 지금 날씨가 좋아서, 지금 하늘에 뜬 달이 유난히 밝고 커서, 우리가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EH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입모양으로 “왜?”라고 물으니, “좋아서”라는 입모양이 돌아왔다. 다시 입모양으로 “나도”라고 대답한 후 이유 없이 터진 웃음과 함께 내리막길을 달렸다. 

이제는 이런 순간이 꿈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지나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문득 서울에서 힘겹게 버텨내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친구들에게 이곳의 바닷가와 나무를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을 힘들게 하는 일 따위 당장 그만두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멈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긴긴 시간을 멈춰 있다 보면 다시 무언가가 하고 싶어질 거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면. 작년부터 지금까지 2명의 지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 


그것은 무엇을 위한 열심이었을까. 

작가의 이전글 예체능을 하며 산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