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은 예상에 없던 선택지
관광과 신입생 OT 때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항공사, 호텔, 여행사, 면세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선배들이 와서 후배들에게 직무소개를 하고 Q&A시간을 가졌었는데 단연 인기1등은 항공사였다. 동기들은 궁금한 것도 많았고 항공사에 취업이라도 된 것처럼 들떠서 웅성웅성하며 경청하고 연신 질문을 했다. ‘호텔리어’라는 드라마의 인기로 호텔취업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그러다가 면세점에 다니는 선배에게 질문을 할 차례가 오자 민망하리만큼 관심도 질문도 없었다. 선배는 어색해하며 계속 질문 없는지 묻다가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만큼 면세점이라는 곳은 생소했고 취업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도 아니었다. 게다가 대입에 실패해 학업에 대한 미련이 남아 편입을 염두하고 있었으니 학교를 다니는 동안 면세점취업은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랬던 내가 졸업 전 실습을 앞두고 “해주야 나 면세점지원할건데 너도 면세점지원할거지?”라는 선배언니의 질문에 별생각 없이 “네”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명품매장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첫 실습 날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를 입고 다른 실습생들과 함께 면세점 곳곳을 안내 받았다.와 이런 곳이 있구나!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네 백화점과는 차원이 달랐다. 화려한 명품매장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구찌…브랜드명을 알려주니 알았지 사실 뭐가 뭔지도 잘 몰랐다. 그저 보이는 매장 하나하나가 어찌나 고급스럽고 화려하던지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도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메이크업이라고는 파우더를 어설프게 찍어 바르는 것 밖에 모른 던 내가 반강제 올백머리에 빨강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모습은 어른을 흉내 낸 여자아이 같이 어색하고 어설퍼서 어쩐지 주눅이 들었다. 실습생들 중 키 크고 예쁜 친구들은 안내데스크로 배정을 받았고 눈이 크고 얼굴이 하얗던 친구는 샤넬화장품으로 별명이 ‘박지윤’이던 언니도 에르메스로 배정을 받았다. 나는 어느 브랜드로 가게 될까? 두근두근하던 때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발리로 가란다. ‘발리?’ 나도 이름 좀 들어 본 곳으로 가기를 바랬었는데 역시 꿈도 야무졌었다. 실습생 서류를 접수할 때 JLPT자격증이 있는 걸 보고 면세점관계자가 “그래 이 정도는 있어야 지원할 수 있는거지!” 했었기 때문에 살짝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어쩌랴 외모도 중요한 것을...이라고 생각하며 실망감을 감췄다.
실습생의 패기가 충만했던 때 예쁨 받는 실습생이 되고 싶어서 어느 책에선가 본대로 가장 먼저 출근해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장님이 오더니 칭찬은 커녕 뭐 하러 일찍 오냐며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핀잔을 주셨다. 신나서 들썩거리던 어깨가 축 쳐졌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그 표현이 딱 맞았던 것 같다. 어차피 한달 짜리 실습생이라 생각해서인지 별로 나에게 관심도 없었고 곁을 내어 주지 않았다. 이것도 텃세라면 텃세인 걸까? 그래도 바로 앞 매장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던 동갑내기 친구가 있는 덕분에 어색함을 줄일 수 있었다. 면세점 최고의 미녀로 불리던 선배도 앞 매장이어서 한창 얼짱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괜찮은 근무환경이었다.
얼마 뒤 다른 브랜드로 재 배정 되었는데 그 매장 앞에는 김, 초콜렛, 한국전통문양의 열쇠고리등 토산품들을 판매하는 매장들이 모여있었다. 명품브랜드들과는 다르게 일본고객들이 지나갈 때마다 “이랏샤이마세 이랏샤이마세” “오미야게데 이이 오이시이 노리데쓰!”(어서오세요 어서오세요 선물로 좋은 맛있는 김입니다.)라고 크게 외치는 선배들의 모습은 놀라웠다. 그만큼 치열해 보였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난 못할 것 같았다.
실습기간도 끝나고 편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던 때 가세가 기울던 집안은 폭삭 망해버린 수준이 되었다. 언감생심 편입은 꿈도 못 꾸게 되었고 적성이나 흥미 따위는 고려할 필요도 없이 졸업하는 동시에 어디라도 취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졌다. 하루 빨리 취업을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나만 빼고) 좋은 일인 것 같았다. 주변의 간절한 바램이 작용한 것일까? 어느 날 실습했던 면세점에서 전화가 왔다. 평가가 좋은 실습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해서 입사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면세점에 취업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그런 타이밍에 전화를 받으니 기쁘기도 하고 어? 내가 좀 괜찮았나? 싶은 우쭐함도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준비 하나 없이 면접을 봤는지 모르겠다. “실습 끝나고 뭐하고 지내셨어요?”라는 질문에 “남자친구가 군대 가서 편지도 쓰고 했습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답변을 정말 해맑게 했다. 그 때 합격을 시켜준 면접관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 결국 면세점에 월급80만원의 아르바이트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주6일 근무에다가 1년 후 정직전환이 될 수 있을지 모르는 깜깜한 상태였지만 그저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조금이나마 집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뿌듯했던 것 같다. 같이 실습을 했던 또래 친구들이 함께 입사를 해서 서로 의지도 할 수 있었고 면세점 앞 포장마차가 즐비하던 곳에서 퇴근 후 떡볶이와 순대를 먹는 즐거움은 그야말로 당시 최고의 즐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