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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어주는 아빠 Apr 21. 2024

교회 속 막힌 담 허물기

외국인과의 연합예배에서 배운 점, 그리고 나의 다짐.

사람은 소통하는 존재이다. 인간이라는 단어는 한자 그대로 人間답게 상호 소통하는 복수(plural)로 존재한다. 

소통에 있어 가장 직접적이고도 우선적인 수단은 언어이다. 언어는 오랜 시간동안 문명의 발전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지만 여전히 그 속에는 많은 모호함이 남아있다.

"개"라는 단어는 귀여운 멍멍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요즘 MZ세대에게는 very much의 의미로 활용되기도 한다. (개 좋아, 개 맛있어) 한편, 아내의 입장에서 보자면 2, 3차로 이어지는 회식을 마치고 만취하여 귀가한 남편을 지칭하는 단어로도 활용된다.

비단 단어뿐 아니라, 같은 언어로 소통되는 대화에서도 의미 전달의 miss와 오해는 수시로 발생하는데,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는 어떠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배려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내 언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언어 속으로 다가가는 배려 말이다.


여기서 본인이 다니는 교회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그렇다. 외국인 성도가 많은 교회다. 1, 2부 예배는 한국어로, 3부 예배는 영어로 진행된다. 국제학교를 기반으로 설립된 교회라서 그런지 3부 예배에는 외국인 선생님과 영어권 문화에 익숙한 청년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본인의 자식도 그 학교의 학생인지라 몇몇 선생님과 아주 가끔씩 인사를 나누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 정도의 소통도 없어 보인다. 하나의 건물을 다른 시간에 공유하는 서로 다른 조직이요. 서로 다른 교회 같다. 


그런데 오늘은 그들과 연합으로 예배를 드렸다. 예배 전 2명의 젊은 외국인 여성(two young ladies with blonde hair)을 만났고, 굿모닝 인사와 함께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she:  오늘 예배에서 우리가 찬양단으로 나가서 찬양을 부를 거야. 

나: 오, 좋네. (oh, that`s good)

she: 근데 너네가 못 알아 들을까봐 미안해

나: 뭐가 미안해. 고마워, 나중에 봐(why sorry? thank you, see you later.)


그리고 얼마 후 예배가 시작되었다. 외국인들로 구성된 찬양단원들의 입에서 나온 노랫말은 놀랍게도 영어가 아닌 한국어 가사였다. 예배 직전에 만난 그녀가 나에게 sorry 라고 말한 의미는, 그들의 영어를 우리가 못 알아들을까봐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한국어 발음이 부족할까봐 한 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감동스러운 배려인가? 어찌 보면 그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손님일 텐데. 그들은 내 이웃을, 내 손님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황금률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인 - 우리를 한국인이라고 지칭하니 참으로 낯설다마는, 평상시 한국 교회에서 행해지는 그런 자연스럽고도 통상적인 인적구성을 말한다 - 의 주도로 이어지는 예배 순서에는 이어지는 순서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사회도, 기도도, 설교도, 광고도 100% 한국어로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똥 묻은 개' 인 나로서는 누구를 비난하거나 탓할 입장도 아니거니와, 그럴 생각도 없다. 그들(예배를 진행하는 분들) 역시 약간의 '간과'가 있었을 뿐, 나쁜 의도는 티끌만큼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손님을 초대한 주인은 뻣뻣하게 앉아 있을 뿐이오, 오히려 손님이 주인을 극진하게 보살피고 대접한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목사가 아니기에 예배 진행 전반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성도로서 교회 속에서, 그리고 예배 속에서 내가 담당하는 역할 범위에서는 이렇게 할 것이다.


먼저, 성도로서 예배 위원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대표 기도이다. 내가 만약 외국인 청년들과의 연합예배에서 대표기도를 맡게 된다면, 그때는 한글 기도문을 작성한 후 이를 영어로 번역하여 - 번역은 물론 구글 번역기가 담당할 것이다 - 준비하고 한글과 영어를 번갈아가며 기도할 것이다. 


두 번째로 본인은 남성 중창단 지휘를 맡고 있고, 두 번째 주일 예배 찬양을 담당한다. 만약 두 번째 주일에 외국인 청년들과 연합 예배 일정이 잡힌다면 그들이 잘 알고 있는 - 그리고 한국인도 아는 - 찬양을 영어로 준비하여 부를 것이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그 외에 특별한 것은 딱히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남았다.


마주치는 그들을 모른 척하지 말고, 웃으며 인사하는 것. 


"good morning" 

그리고 

"how are you" 


사실 마음이야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만은 많은 한국인의 뼛속 깊이 새겨진 영어 공포, 

그리고 외국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제안한다.

매주 일요일마다 '딱 한 명' 이라는 목표를 정해서 "good morning", "how are you" 인사를 실천하자고 말이다.


1년이면 적어도 교회 속 막힌 담에 금이라도 가지 않을까?


( 그런데, "fine. thank you. and you?" 다음엔 뭐라고 해야 하나...)


https://www.youtube.com/watch?v=Lf-D3Ysig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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